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11) 잘라먹어도 기가 막힌 김맛 / 안희환
우리
큰 아들 효빈이는 지금 말레이시아에 가 있다. 사실 그곳에 보낸 데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었다. a. 외국 문화를 접하게 하는 것. b.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것. c. 살 빼주는 것. 세 번째 내용은 우습지만 사실이다. 우리 아이를 맡은 내 친구 역시 자신이 효빈의 살을 빼 보겠다고
제안을 했고.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지난 번 화상 채팅을 하는데 우리 효빈이의 체격이 더 커진 것이었다. 못 먹어서 부었는가 하고 살펴보니 얼굴에 윤기가 줄줄 흐르는 게 확실히 영양실조는 아니었다. 영양과다였다. 친구 하는 말이 어른 만큼 먹는다나. 다이어트는 확실히 실패였다. 아들놈 말이 말레이시아 음식이 천국의 음식맛이라는데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생활을 생각해본다. 나 역시 먹성이 나쁜 편은 아닌데 먹을 게 워낙 없어서 삐쩍 마른 모습이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그나마도 밥을 맘껏 먹지는 못했다. 그러니 맛있는 반찬이라고 하는 것은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아니면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명절이 되면 최고급 반찬인 김이 나왔다. 우리 4남매에게는 할당된 양이 있었는데 부모님께 혼날까봐 서로의 두께를 재보고 싶은 충동을 눌러야했다. 아무튼 모처럼 내 몫이 된 김 뭉치는 그야말로 재산이었고 그 재산은 아껴써야 했다. 나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것은 내 김을 4조각이나 6조각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한번에 먹을 것을 네 번이나 여섯 번에 나누어 먹으니 김이 금방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밥이 맛없는 것도 아니었다. 약간의 김이 뒤섞인 밥알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 환상적인 맛을 알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 고도의 미각이 발달한 내 혓바닥이여. ^0^
나는 그때의 한을 풀기 위해 지금도 김을 줄기차게 먹는다. 한번에 두 개씩 얹어서 먹곤 한다. 어릴적 먹던 양의 8배 내지는 12배의 양인데 밥은 여전히 내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김을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두 개씩 싸먹어도 내 아내에게 아무런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런 것으로 행복해하면 우스운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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