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하나를 두고 여럿이서 쓰기에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그 화장실이 집들을 한참 돌아가야 했기에 불편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많은 어린이들이 저녁에 화장실 가는 것을 무서워했는데 그것은 가로등도 없는데다가 집 사이사이의 골목이 워낙 으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어땠을까? 워낙 용맹하였는지라 겁이 없었다.
물론 전설의 고향 비슷한 텔레비전 프로를 시청한 다음에는 또 다른 문제였다. 느닷없이 화장실 밑바닥 시커먼 곳에서 하얀 손이 올라와 내 다리를 잡아 화장실 밑으로 끌러 당길까봐 오싹했던 것이다. 그럴 때면 나오려는 녀석들을 꾹꾹 눌러가며 참아내곤 하였다. 아마도 그때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 내 인내심이 강하여졌나보다.
아무튼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를 보지 않았을 때는 거침없이 화장실로 향했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곳에서 비밀스런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곤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 기특한 아이였다. ^0^ . 그런데 내 큰 아들 녀석인 효빈이는 그리도 겁이 많은 거야?. 결론은 하나다. 효빈 엄마가 겁이 무척 많은데 그건 분명 엄마를 닮은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한번은 밤중에 너무 급해서 화장실로 뛰어가다가 죽을 뻔했다. 아 글쎄 어떤 머리 나쁜 아줌마가 화장실 앞에 빨래를 걸어놓고 말린 빨래를 가져간 다음 빨랫줄을 치우지 않은 것이다. 빨래가 널려 있을 때는 덩어리가 크니까 밤중에라도 잘 볼 수 있지만 얇은 빨랫줄이야 어둔 밤에 제대로 보이기나 하는가?
밤중에 급한 상태에서 줄 따위가 보일 리 없는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다가 그만 그 빨랫줄에 목이 걸리고 말았다. 그 빨랫줄은 강하면서도 신축성이 있었다. 내 목이 빨랫줄을 끌고 간 것도 잠시 나는 곧 빨랫줄의 반동에 의해 뒤로 당겨졌고 바닥에 뒹굴고 말았다. 그때 얼마나 아팠던지 급한 것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메슬로우는 인간의 욕구 단계를 말하면서 가장 먼저 생리적인 욕구이고 그 다음이 안전에 대한 욕구라고 했는데,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데 그 당시의 경험을 회상해보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리적인 욕구보다 앞설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화장실 급한 내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을 만나자 그 급한 것도 잊어버리는 것 아닌가?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빨랫줄을 걸어놓고 치우지 않은 아줌마를 찾아 나섰다. 찾아봐야 별 수 없지만 그래도 찾으리란 각오로 수색을 벌였다. 그리고 아직 찾지도 못한 그 아줌마를 향해 미운 마음을 가졌다. 시간이 지나고 부딪혔던 머리의 통증이 사라져가면서 자연스럽게 익명의 아줌마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다.
이제는 아무리 급해도 뛰어갈 이유가 없는 우리 집 구조이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겠지만 내게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내 어릴 적 소원 중 하나가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볼일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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