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빗줄기가 그치면 틈틈이 비는 내리지만 장마로 인해 동네가 잠기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학교로 피난 가 있던 동네 사람들은 조용히 침묵 속에서 짐을 꾸리고 우리 집 역시 차분한 모습으로 짐을 꾸린다. 나는 그 동안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던 천국 생활이 끝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무거운 부모님의 표정 때문에 내색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신 부모님들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워진다. 전보다 더 신경질을 부리곤 해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다. 사실 그때는 부모님의 그런 돌변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버지야 워낙에 무뚝뚝하셨으니 그렇다 해도 어머니까지 무게를 잡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집안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다. 내심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워낙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기에 입조심을 하였다.
시간이 지나 상황 파악을 하게 되면서 왜 부모님이 그토록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젖어버린 이불, 물에 불어버려 약해진 벽들(판자촌의 벽은 죄다 나무로 대충 세운 것이니 그 타격이 큰 것이다), 다 망가져버린 가전제품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할퀴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의 어느 한구석도 정상적인 상태로 남아있지를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밖에 내다놓고 햇볕에 말려야 했다.
문제는 집 자체였는데 집을 내다 널 수는 없는 것이고 물을 먹은 벽과 바닥에서는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약을 뿌리고 긁어내도 끊임없이 퍼져가는 곰팡이가 얼마나 해로운지를 몰랐던 우리 사남매만 아무 생각 없이 곰팜이 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 부모님들은 그 곰팡이가 제거되지 않는 것에 많은 신경을 쓰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특히 이것은 말하지 뭐하지만 그래도 언급을 하겠다. 장마로 인해 물이 허리 이상 차오르면서 재래식 화장실에서 떠 오른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그것이 방 안에까지 흘러 들어왔었다. 어디 화장실의 배설물만 들어왔겠는가? 물에 휩쓸리는 것들은 뭐든 들어왔으니까. 아무튼 물이 빠지면서 건더기만 남아버린 현장은 부모님들의 눈에 서글픈 눈물을 채우고야 말았던 것이다. 왜 나는 그때 그게 그렇게 더럽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어리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특권을 누리는 것이었음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온갖 의무와 역할로부터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속으로는 타들어가면서도 어린아이들에게까지는 말하지 않기에, 또 말해봐야 어린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기에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이 마냥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희극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한
달 가까이 이것저것을 햇볕에 널어놓은 채 마르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이제야 뭉클하게 하는 것이 올라온다. 그렇게 사시면서 우리
4남매를 키웠구나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멋대로 들어왔다가 되돌아가가지 않던 건더기는 그렇게 어린 날 판자촌을 연상시키는 또 하나의
이미지이다. 사실 기억 속의 그 장면들은 현실 속의 건더기처럼 더럽게 여겨지진 않는다. 추억의 도금이 입혀진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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