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학교로 피난 간 기쁨 / 안희환

안희환2 2006. 3. 6. 10:30

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8) 학교로 피난 간 기쁨 / 안희환


       


 

 

장마비가 세차게 쏟아질 때면 또 하나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물난리의 추억들이다. 지금은 빗물펌프 처리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장마가 져도 물이 차오르지는 않지만 내가 어릴 적엔 그런 시설이 없기 때문에 큰 비를 만나면 많은 피해를 입곤 했었다. 거센 장마 비는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일종의 재앙 비슷한 것이었다. 온 마을이 푹 잠기게 만들어 살 소망을 질식시켜버리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과 중학생이던 시절에 큰 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집에서 잠을 자던 가족들은 한 밤에 잠을 깨야만 했다. 어느새 방에까지 물이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불은 이미 다 젖은 상태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잠을 자다가 물이 찬 것을 느낄 때쯤 되어서야 일어났으니 참 둔한 가족들이었다. 그것을 가장 예민한(?) 내가 발견해내었다.


가족들은 피난 준비를 했다. 이불을 포함해 젖어선 안 될 것들을 높은 곳에 쌓아놓고는 집을 나섰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날 부러진 우산으로 막으며 피난을 간 우리들은 한참을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여했는데 짐이 있는데다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려니 여간 곤욕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들이 도착한 곳은 서면초등학교였다. 그곳은 내가 다니던 학교이다. 그곳에는 이미 피난을 온 동네 사람들이 있었고 속속 우리 뒤를 이어 동네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들의 시름을 생각지도 않고 다만 친구들이 한 학교 한 교실 내에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기쁨에 들떠 있었다. 배급으로 나온 검은색 담요를 자랑스럽게 걸친 후 슈퍼맨이라면서 뛰어다녔었다. 또한 배급으로 나온 라면을 기쁨에 겨워 몇 개씩 손에 들고 다녔다. 라면 하나도 맘대로 끓여먹지 못하던 형편에 박스 채 들어온 라면이니 얼마나 좋았던지 신이 났던 것이다.


밖에는 엄청난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친구들과 뛰어놀 수 없는 한 밤이 되면 그 빗소리를 들으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맘껏 노는 그런 상상.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했던 생각들을 진진하게 생각하다가 잠이 들면 어느새 아침이 왔고 비는 그때도 떠날 줄을 모른 채 창문을 두드리곤 했었다. 아무리 두들겨도 문을 열어주는 이 없어 원망하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3층집이다. 게다가 그 집이 약간 언덕진 곳에 있다. 즉 노아의 홍수 때처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집은 잠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철없는 아이때나 장마에 집이 잠겨도 좋다고 놀러 다녔지, 나이가 조금 더 들고 나서는 장마가 지긋지긋하였었다. 그런 식으로 학교에서 단체로 피난생활을 한다는 것이 창피해졌고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야한다는 것이 민망해졌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을 다 잊어버렸다.


다만 지금도 중랑천 같은 곳이나 문천 같은 곳이 장마로 인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접하면 남 다른 안쓰러움을 느끼곤 한다. 장담하건대 그것은 몸으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아무튼 약간 언덕진 곳의 3층에 있는 집 안에서 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내려다보면 여러 가지 상념이 마음속을 누비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