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7) 부시면 짓고 부시면 짓고 / 안희환
우리 동네에는 벽돌로 만든 집이 한 채도 없었다. 그런 집이 들어서는 것은 내가 청년의 나이가 되고 난 후의 일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판자들로 만든 집이었고 그러니 판자촌이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사실 판자촌 집 친구들 빼고는 다른 집에 놀러갈 일이 없는 나였기에 대개의 집이 그런가보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판자촌의 집들은 개보수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철근도 들어가지 않고 벽돌도 쓰이지 않고 시멘트도 활용하지 않고 판자로만 지으니 말이다. 망치, 톱, 못 등 몇 가지의 도구만 있어도 확장이 가능한 터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기회가 되면 조금씩 좁은 방을 넓혀서 여러 식구가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곤 하였다. 원래 목수 출신이었던 아버지에게 그런 식으로 집을 넓히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방을 조금 넓히면, 혹은 창고라도 조금 넓히면 도대체 누구의 신고로 오는지 철거반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여자들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 시커먼 아저씨들뿐이었는데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철거반들의 모습은 야차였다. 뿔 달리지 않은 도깨비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저런 살벌한 무기들을 들고 와서 다짜고짜 후려패기 시작했는데 넓힌 부분을 박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실갱이 속에 주눅 든 아이들은 엄마 뒤에 숨어 눈치를 보고 있었고 악에 받친 어른들은 욕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몸으로 막아서는 사람도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넓혀진 부분들을 무기들의 위력은 판자를 쪼가리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짓고 세우는 것보다 쉬운 것이 부수는 것이란 것을 말이다. 며칠간 힘겹게 지은 부분을 한 시간도 안 걸려 부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철거반들은 먼지와 한숨 소리를 뒤로한 채 돌아가고 폐허가 된 한쪽 면을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엔 근심 반 분노 반의 그림자가 덮인다. 그 당시 일하지 않으시던 아빠가 모처럼 가족을 위해 넓힌 공간이 쓰레기더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오기 때문인지 아니면 필요 때문인지 아빠는 다시 공간을 넓히곤 했다. 그렇게 이어지는 판자촌 사람들과 철거반의 줄다리기는 몇 차례고 계속 되었다.
사실 그때 나는 철거반 아저씨들을 미워했었다.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겁이 나서 나서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분이 나서 씩씩거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저씨들의 입장도 이해한다. 그들은 공공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이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실행하지 않으면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그때의 기억은 꼭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어진 집의 방바닥에 누워 망치질을 해도 깨지지 않을 벽을 두들겨본다. 작은 내 주먹으로 꿍 하고 쳐보는 것이다. 벽이 아닌 주먹이 깨지지 않을 만큼의 강도로 말이다. ^0^ 그래 이것만으로도 행복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래 이것 하나만으로 나는 웃을 이유가 얼마든지 있다.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안희환판자촌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가 끝난 후 겪는 후유증 / 안희환 (0) | 2006.03.07 |
---|---|
학교로 피난 간 기쁨 / 안희환 (0) | 2006.03.06 |
개구리를 맞추는 자가 이긴다 / 안희환 (0) | 2006.03.06 |
안양천에 배를 띄우고 / 안희환 (0) | 2006.03.02 |
자유낙하식 화장실/ 안희환 (0) | 2006.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