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자유낙하식 화장실/ 안희환

안희환2 2006. 3. 2. 17:11

어린시절에 경험한 판자촌의 생활(4) 자유낙하식 화장실/ 안희환


   
 

 

사람에게 있어서 배설은 먹고 마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대소변을 제대로 못볼 경우 그것이 몸에 쌓이고 병이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음식을 먹는 식당에 비해 배설을 하는 화장실은 하찮게 여겨진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나가는 것보다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많은 인간 본성 때문인 듯하다.


다섯 차례 가량 중국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북경의 후미진 곳에서 화장실을 갔었는데 깜짝 놀랐다. 칸막이 없이 나란히 앉아서 볼 일을 봐야 하는 구조였는데 그야말로 민망하기가 그지없었다. 자꾸 옆 사람 눈치가 보여 나와야 할 게 나오질 않는 것이다. 뱃속의 사인과 아래쪽의 사인이 안 맞을 때 생기는 고통이여! 사람들이 나가고 나서야 볼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화장실들도 지금이야 대부분이 수세식이지만 예전 우리가 살던 동네만 해도 수세식 화장실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곳에 살다가 처음 친구네 집 수세식 화장실을 보았을 때 나는 그곳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내가 살던 판자촌의 경우  수세식 화장실은커녕 재래식 화장실조차 집집마다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 동네는 보통 10여 집이 하나의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 화장실은 무척 깊은 화장실이었으며 자유낙하식 구조로써 화장실 바닥에 물이 고여 있을 때는 난처한 일을 겪게 하는 화장실이었다. 덩어리의 낙하와 동시에 반작용으로 튀어 오르는 액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절묘하게 피해야 했는데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화장실인 셈이다.


우리를 힘들게 할 때는 보통 아침 무렵이었다. 아침은 저마다 급한 사정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화장실 안에 자리 잡고 있을 때에는 그야말로 얼굴이 사색이 되어야만 했다. 메슬로우가 말한 인간 욕구의 가장 기초인 생리적인 욕구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개인 화장실은 존재하지 않으니...


더욱 난처한 경우는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는데다가 그 앞에 한 두 사람이 줄서 있는 경우이다. 그때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즉시로 자리 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집들의 처지고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최선 다해 찾아보면 줄이 없는 화장실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구세주의 강림이었다. 그곳에 줄을 서고 있을 때 그 화장실을 사용할 진짜 권한을 가진 이가 나타나면 보이지 않는 듯이 행동을 했었다. ^0^


요즘 편안하게 앉아서 볼일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이런 여유와 만족을 안겨준 우리 가족만의 독립된 공간인 수세식 화장실에 감사하게 된다. (막상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다 보니 어릴 적 생각처럼 화장실에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게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공연히 변기 주변을 쓰다듬어 본다. 아내가 보면 변태라고 할 것이다.


참 요즘 우리 집 화장실에는 비데기도 설치되어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