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에 경험한 판자촌의 생활(3) 서리한 무우 맛을 아는가?/ 안희환
먹 거리가 참 많은 요즘 세상이다. 우리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구로시장(재래식 시장)이 있는데 맛있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떡복기, 한 줄에 천원 씩 하는데도 푸짐하게 내용물이 들어간 김밥, 한 그릇에 2천 오백 원 하는 세숫대야 냉면, 양념 맛이 기가 막힌 천원 짜리 닭꼬치,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번데기. 기타 등등
산책을 워낙 좋아하는 나는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사먹곤 했다. 둘 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입장인지라 신경을 쓰면서도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게 시장 음식을 사먹는 것이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도움 될 리가 없지 ^0^) 먹는 순간만큼은 체중에 대한 모든 시름을 잊고 그 맛에 집중하였다. 어릴 적 못 먹은 복수를 하듯이 말이다
어린 시절 내가 간식이라고 하는 사치를 누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주식조차 불분명한데 간식이 어디 있는가? 당장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주식 사이에 무언가를 먹는 것은 참으로 헤픈 일이었다. 그나마도 끼니가 떨어지면 천막교회 목사님이 아들 통해 갖다 주신 쌀로 먹고 살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혈기와 왕성하고 식욕이 불 일듯 하는 우리 어린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울 대책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아직 푸르스름할 때의 무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들은 무서리를 하기로 결단하였다. 이어 무서리를 위한 아이들만의 특공대가 조직이 되고 우리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돈다.
알다시피 무가 자라고 있는 밭은 우리들 것이 아니다. 무서운 주인을 거느리고 있는 무들은 태평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쉬고 있다.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하나는 밤중에 무를 서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낮에 길을 가다가 발로 무를 툭 차서 뽑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가져오는 것인데 주인에게 걸리면 어느 정도 말라버린 무를 보여주며 뽑아진 것을 주웠다고 둘러대는 것이다.
그런 행위가 도둑질이니 하는 개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죄의식을 느끼진 못했으니 말이다. 또 무 밭 주인아저씨도 우리를 도둑놈으로 몰아 부친 적도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생긴 무를 지푸라기 등으로 흙을 닦아낸 후 입으로 껍질을 벗긴 후 베어 먹었다. 아~ 그 시원한 맛이란...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다 먹고 난 후 서로의 입가에 묻은 흙을 보며 웃곤 했던 우리들이었다.
세월이 지나 그때 생각을 하며 무를 잘라달라고 해서 베어 먹으면 맛이 없다. 맛있는 무는 다 멸종한 모양이다. 품질 개량을 한답시고 옛 무를 다 없애 버려서 그런 것인지, 농약을 많이 써서 무맛이 변해버린 것인지, 그도 아니면 무에 대해서만 내 입맛이 죽어버렸든지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봐도 무를 먹는 내 입맛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내 입맛을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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