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철근과 대나무로 만든 검 / 안희환

안희환2 2005. 10. 30. 00:40
릴 적 경험한 판자촌의 생활(2) 철근과 대나무로 만든 검 / 안희환 



 

나는 어린 시절의 장난감 하면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장난감을 처음으로 받아본 것은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노동자로 일하러 갔다고 돌아오신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그 이전에는 무뚝뚝한 아버지로부터 꾸중만 잔뜩 받았지 장난감이고 뭐고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이후로도 기억에 남는 것이 전무하고...


그러니 장난감 없는 나와 우리 동네 아이들은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아야만 했다. 산에 갔을 때 주운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새총을 만들거나, 아니면 그 나무를 톱으로 알맞게 자른 후 자치기를 하거나, 노란 고무줄을 손가락에 걸고 종이를 접어서 날리며 놀곤 했던 것이다. 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나란히 선채 서로 쏘기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놀던 장난감 중 하나는 철근으로 만든 칼이다. 공사장에서 자르고 남긴 짧은 철근 조작들. 그중 적절한 것을 골라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 철근을 활활 타오르는 연탄구멍 속에 집어넣는다. 빨갛게 달구어진 철근으로 대나무에 구멍을 뚫은 후 손잡이를 따로 만들고 대나무 칼지갑에 철근 칼을 꼽으면 외형은 영락없는 대나무이다.


칼싸움을 할 때는 대나무에서 철근을 빼내어 하는데 휘두르다가 잘못하여 머리를 맞는 수가 있다. 그러면 30여분 쓰러져 있다가 다시 부활하여 칼싸움을 하곤 했다. 그 묵직한 통증이란 상상만 해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아도 다시는 맞아보고 싶지 않은 맛이다. 그건 분명히 어른이 맞아도 쓰러질 위력이었다. 그때 단련된 덕에 내 머리가 단단한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맞아 쓰러진 전우의 시체(?)를 넘어 치열한 칼싸움은 계속 이어지고 한쪽이 거의 몰락하여 항복을 하면 칼싸움이 끝난다. 물론 어느 한쪽의 아이가 불쑥 항복을 선언하면 칼싸움은 끝이 나지만 결코 그런 말을 하는 아이는 없다. 열받은 같은 편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느니 차라리 스러졌다가 부활하는 게 낫다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근사한 플라스틱 칼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생각을 한다. "너희들은 정말 복이다. 이걸로는 칼싸움 하다가 머리 맞아도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진 못할 거다". 그걸 알면 애들이 아니겠지만.... 나중에 내가 겪은 일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면 나이 들어 주책맞게 옛날이야기만 한다고 할까?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물론 지금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어릴 적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장난감 칼 하나 정도는 사줄 수 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많은 나라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 하나 없이 거칠게 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찡하다.


어렵게 사는 나라를 여행할 때가 되면 장난감 칼 한 보따리를 사들고 갈까? 하긴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