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경제올인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안희환

안희환2 2005. 9. 28. 10:35

경제올인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안희환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는 꽤 유명한 이론이다. 메슬로우가 나눈 다섯 단계를 보면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 욕구, 3단계: 소속과 사랑의 욕구, 4단계: 자존감 욕구, 5단계: 자아실현 욕구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이 다섯 가지 단계라고 하는 것이 상당히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옳다고 하지 않고 상당히 옳다고 표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의 경우 자존감 욕구가 사랑과 소속의 욕구보다 우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단계에서 5단계 사이에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른 우선순위를 가질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1, 2단계는 나머지 단계들에 비해서 더욱 기초적인 욕구이기에 순서가 바뀔 여지는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생리적인 욕구로서 지금 화장실이 무척 급한 사람을 붙잡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자고 해보자. 혹은 자존감이나 소속감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자고 해보자. 그도 아니면 자아실현을 위한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고 진지하게 붙잡아보자. 함께 앉아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다른 이야기가 들어올 리가 없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니 멀리 생각할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 동포인 북한만 보아도 굶주림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떤 이는 북한만 아니면 그 어떤 곳이라도 좋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이는 북한을 탈출하다가 붙잡혀 발이 잘리고도 또 탈출을 했다. 그들의 목표는 그리 고상하지 않다. 굶어죽기 싫다는 지극히 간단한 명제가 그들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한 것이다. 생리적인 욕구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잘 보여주지 않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면에서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메슬로우의 이론에 따르면 가장 기초적인 생리적 욕구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생 문제를 뒷전에 놔두고 논쟁거리를 하루가 멀다 하고 만들어내는 노대통령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국가 경제를 살리는데 최우선을 두면 좋겠다는 제한들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경제올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그것은 유신시대에나 하던 것이라는 논지이다. 간교하고 교묘한 정치논리이며, 무책인한 선동정치라는 표현까지도 사용하였다. 경제올인론에 매여 다른 중요한 이슈들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불만인 것이다.


노대통령은 수도 이전, 연정, 8.31 부동산 대책, 과거사 청산, 선거구제 개편, 세금 인상 등 많은 정책들을 숨 돌릴 틈도 없이 내놓았고 그런 안건들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야당의 비협조적인 모습 등으로 인해 그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하긴 내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국민들이 딴지를 건다면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대통령이 현재 우리나라 서민들의 고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경제올인이 아니라 경제회복이다. 즉 경제를 살리는 일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절박한 사람들에게, 즉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괴로운 사람들에게 고상한 것들만 언급하면서 안 따라와 준다고 닦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누가 신용불량자가 됐다더라 하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들려오는 이야기들이다. 어느 가정이 경제적인 문제로 깨졌다는 소식도 흔한 일이 되지 않았는가? 멀쩡하던 사람이 가정을 버리고 노숙자로 살아가는 것은 먼 나라의 일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먹는 장사는 된다고 했는데 식당들도 곳곳에서 문을 닫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정작 들어야할 비판마저도 딴지 거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고 야당이나 언론이나 국민 탓만 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어야 하는 법인데 귓속에 솜을 틀어막고 고상한 음악을 크게 틀은 이어폰을 꽃은 채 그저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들만 되풀이한다면 그나마 지지하던 국민들조차 등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세금 인상 등으로 국민들 허리띠를 어떻게 조일까(죄송한 표현이지만)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기본적인 욕구부터 해결해줄까를 염려하는 대통령이 되어주시라. 부디 국민들의 상황을 헤아려주는 성군(?)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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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영석님

안희환 블러그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29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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