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요21:15-19(2012. 6. 17. 주일오후예배 설교)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사랑하면 특징이 나타남.
상대방을 생각하게 됨. 보고 싶음.
함께 있는 것이 좋음. 잘 해주고 싶음.
아프리카 오지에서 전도탐험을 계속하던 리빙스턴에게는 이미 약혼한 연인이 본국에 있었다. 메리라고 부르는 그 여인에게 쓴 리빙스턴의 편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친애하는 자여! 이미 그대는 나의 곁에 있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에 대한 그대의 사랑이 나에 대한 그것보다 더욱 깊기를 바라오. 그리고 하나님의 강한 힘과 은총에 힘입어 한결같이 자신을 지켜나가기 바라오. 내 존재가 당신의 신앙에 있어 방해됨이 없기를 기도하겠소. 우리들이 서로 측량할 길 없이 깊은 우정을 느낀다고 해도, 언제나 예수를 우리들 공동의 친구로 삼고, 그가 길잡이가 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총으로 모든 죄로부터 그대를 지켜 주실 것을 빕니다."
리빙스턴은 진심으로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주님과 자신과의 사이에 그 어떤 존재도 걸림돌로 두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세상엔 이처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1. 예수님의 질문
1) 사랑하느냐는 질문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임.
마16장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못지않은 질문.
a. 마16장은 주님의 사람이 되는 질문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b. 요21장은 주님의 사람답게 되는 질문
2) 비교급의 질문
?여기 있는 이 사람들보다?
비교급.
그러나 최상급. 최고로 나를 사랑하느냐?
최상급의 두 가지 질문
a. 다른 것들보다 나를
이것은 사실상 통과한 질문
그러니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던 것임.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막1장.
b. 이 사람들보다 나를
다른 것은 비교하거나 그런 과정을 통해 최상이 되려하지 않아도 예수님 사랑하는 것은 그래도 됨
엘리야. 열심이 특심. 사랑이 제일 크다는 의미와 연결.
그렇기에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뜨겁게 섬기는 것임.
갈렐산에서의 기도 제목.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왕하18장.
3) 세 번이나 묻는 질문
이것이 베드로를 당혹스럽게 함.
동일한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는 것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듦.
예수님의 질문이기에 함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질문이었다면 화를 낼 수도 있었을 것임.
나도 아내가 같은 것으로 여러 번 물으면 짜증을 냄.
그런데 안 그러시던 예수님이 그러심.
4) 상황이 난처한 상황
예수님을 세 번 부인. 계집종 앞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고기 잡으러 온 베드로
한 마리도 못 잡았다가 주님 때문에 잡음.
예수님을 뵈는 것 자체가 쑥스러운 상황. 그런데 사랑하냐고 물으시는 예수님. 그것도 세 번이나. 이씨 뭐야?
5) 예수님은 이러한 질문을 할 자격이 있으심
먼저 사랑하셨기에
a. 베드로를 찾아가신 예수님
찾아가야 함. 가만히 있으면 돌아오지 않음
괘씸하게 여기는 것은 구차한 이야기임. 괘씸해도 찾아가는 것임.
은관. 연락 없음.
결혼식 앞두고 연락. 찾아감. 그런 것 따지면 안 됨.
얼마 전 입원. 찾아가 기도해줌. 고마워함. 그 엄마 권사님. 눈물이 글썽. 자신은 한 번도 관심 갖지 않았는데. ?뭐 그런 걸 따져요??. 자신은 인생을 헛살았다고 함.
찾아가라. 절대 내버려두지 말라.
b. 베드로의 상처 치유
숯불
세 번의 질문도 동일한 의미가 있음.
세심히 관찰. 사랑의 증거. 그래야 상태를 알게 됨.
c. 대화 속에서
나 같으면 그럴 것 같음.
날 사랑한다고? 날 사랑하는데 너 여기에서 뭐하고 있니? 웃기고 있네.
그러나 주님은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으심.
2. 베드로의 대답
1) 주님을 사랑한다는 대답
역시 베드로다운 모습
다른 이라면 잠잠했을 것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 못했을 것임.
걸리는 게 있으니까.
부인하고
고기 잡으러 간 상태에서
2) 두 번까지 뻔뻔한 베드로
역시 베드로임.
두 번째에서 주춤할 만도 한데 여전히 주춤하지 않음
당연한 것을 뭐 하러 묻느냐는 태도임
그러나 밉게 보이지는 않음
머리 굴리는 사람이 아니라 솔직한 사람이기에
3) 세 번째에서 근심하는 베드로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이쯤 되니 베드로도 더 이상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함.
이번 질문은 무언가 무게가 있는 질문이구나?
무언가 주님의 분명한 뜻과 계획이 있는 질문이구나?
내 생각으로 동일한 세 가지의 질문과 대답의 장면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임.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교육방법이 참 탁월하다는 생각도 들음.
3. 사랑을 확인하신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
1) 내 양을 먹이라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양을 치는 유목민으로 살아간 이스라엘 백성.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는 이들. 그런 그들에게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너무나도 분명함.
너무나도 세미하고 정성을 들이는 과정이 필요함.
물을 먹이는데도. 출렁이는 물에서는 안 마심.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풀을 뜯기는 데도. 독초를 구분 못하는 양. 성도들도 마찬가지임. 이단 메시지 구분 못함. 자극성있는 음료처럼 맛은 좋음.
양을 이끌고 가는데도. 방향. 거리 감각이 짧은 양.
맹수들과 싸우는데도. 직접 싸울 수 없는 양의 형편. 짧은 다리는 무용지물. 말은 뒷발질.
쉬게 하는데도. 두려우면 잠을 못 자는 양.
울 안에 두는데도
2) 양을 치고 먹이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그것은 후일에 베드로가 하는 사역을 보면 알게 됨
a. 전도하는 것
하나님의 양떼를 늘이는 것.
양을 치는 주요 목적. 양의 떼가 커지는 것. 야곱의 양치기 생활.
양떼가 많아지려면 전도해야 함.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으리라. 돌 맞고도 전도.
베드로는? 역시 전도. 앉은뱅이 일으키고서.
b. 말씀으로 성장케 하는 것
양떼를 키우고 살찌우는 것
절대로 그냥 자라지 않는 양처럼 절대로 그냥 자라지 않는 성도들.
끝없는 관심. 돌봄. 사랑. 기도. 권면.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일.
주일 오전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는 신앙이 자라지 않음. 제자리걸음일 뿐임.
공예배 참석. 효빈이 이야기.
양육. 개인적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는 생활. 봉사하는 삶. 증거하는 삶 등이 필요함.
3) 왜 주님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셨는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주님의 일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음.
a. 사랑으로 할 때 이익을 구하지 않음.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삯군.
돈 때문에 생기는 많은 문제들. 주님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b. 사랑으로 할 때 중간에 그만 두지 않음
주님을 사랑할 때 계속적으로 사명 감당이 가능함.
주님의 뜻이라 여길 때.
마틴 루터킹. 그에게 있던 두려움.
링컨. 힘겨운 과정
사역 역시 마찬가지임. 교사, 찬양대, 기관의 임역원.
c. 사랑으로 할 때 한계 이상의 역할을 감당함.
불 속에 있는 자녀를 건진 엄마. 옆구리에 차고서. 힘도 없는 여자였는데...
사랑 속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많음.
주님의 일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 주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해낼 수가 있는 것임.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예고.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주님을 사랑하는 베드로는 끝까지 감.
결론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가? 이것이 본질.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음.
우간다에서 전도 사역에 지도적 역할을 한 훼스토 키벤제레는 <나는 이디아민을 사랑한다>라는 책자를 썼다. 그는 그 책에서 우간다의 교회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다음 인용문은 우간다 역사상 첫 순교자들을 말한 것이다.
같은 해, 곧 1885년 초에 세 명의 그리스도인 소년들이 우간다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렸다. 왕은 기독교를 짓밟아 버릴 목적으로 이 사환 소년들을 체포 할 것을 명령하였다.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이 15세, 가장 어린 소년이 11세인 유수푸였다. 사람들이 울고 부모들이 눈물로 간청해도 그들은 생명을 내걸고 믿음을 고수함으로써 화형 틀에 매달리게 되었다.
화형을 집행하는 장소에서 그들은 왕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주님의 위엄을 왕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가 우리 몸을 불 가운데 넣었지만 우리는 이 불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며, 곧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주님 곁에 있게 될 것입니다. 왕에게 회개하고 마음을 바꾸라고 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불 못과 멸망으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가장 어린 유수푸가 "내 손을 자르지 말아 주세요. 나는 불속에서 몸부림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 (불)이 나를 주님께로 데려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소년들이 죽던 날에 40명의 어른들이 예수께로 돌아왔다. 이것은 불이나 고난이 막을 수 없는 새로운 생명이었다. 이 세 소년이 바로 우간다의 첫 그리스도인 순교자로서 캄파라 근교에 기념비가 있다.
1887년, 교회 창립 10주년 말에 100여 명이 죽임을 당했다. 이 소년들의 죽음 때문에 결신자가 일어났던 그 마을에서 순교자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
주님을 사랑하는가? 생명까지 드릴 수 있음.
그렇다면 무엇을 못 드리겠는가? 그것이 헌신의 바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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