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특별설교

오직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 고린도전서3:1-9

안희환2 2012. 5. 25. 01:39

오직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 고린도전서3:1-9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

 

성경의 고백들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1.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분쟁들

 

1) 바울이 본 고린도교회의 수준

 

바울이 본 고린도교회의 수준-영적인 어린아이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

 

-자연인

구원받지 못한 사람.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 자신이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이든지 그것은 구원과 상관없는 일. 어떤 일을 하든지 마찬가지임. 아직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

 

-육에 속한 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았으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 어린아이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리그도인.

 

성도 가운데도 이처럼 영적인 상태가 어린 사람이 있음.

이것은 신앙의 연수와 상관이 없음.

이것은 교회에서의 직분과 상관이 없음. 목사라는 것이 영적인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함. 장로라는 것도 마찬가지임. 어느 큰 교단의 선교위원회. 선교비를 위원회 임원들이 나누어 가짐. 그 중 한 장로님이 1000만원을 가져다 썼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추궁을 받으니까 되려 큰 소리. 그것 때문에 3일간 금식하며 회개기도 했는데 왜 또 그러느냐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장로가 영적 어린아이인가? 장성한 자인가? 장로이지만, 교단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지만, 선교 위원회 임원이지만 영적으로 장성한 자는 절대 아니다. 아니 구원받은 자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구원받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어떻게 헌금으로 들어온 돈을 자기가 쓸 수 있을까? 결국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인 것이다. 권사도 마찬가지.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

신령한 자. 이것은 은사가 많은 자를 의미하지 않음. 은사 많은 자를 의미한다면 고린도 교회는 장성한 자가 많은 교회. 은사가 많은 교회이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정반대의 평가를 듣지 않는가?

성화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임-웨슬레의 표현.

섬김의 사람-최고의 가치이기에.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 우리 교회의 감사한 일. 섬김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음. 잘 기억하라. 주일에 한번 교회 나오는 것으로 신앙의 모습을 갖추어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교회에서 섬김의 기회를 가지라. 더 나아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속에서, 세상에서 섬김의 모습을 보이라.

전도-자식을 낳는 것. 장성하여 결혼하면 자녀를 낳듯이.

 

2) 영적 어린아이의 특성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영적 어린아이의 일반적인 특성이 잘 드러남.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여기에서의 젖이나 밥이 의미하는 것은? 말씀임.

말씀도 두 종류 젖과 같은 말씀과 밥과 같은 말씀. 히브리서에는 조금 다른 표현.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5)

-젖과 같은 말씀. 감당하기 쉬운 말씀. 축복 받아라. 주일을 지켜라. 헌금생활해라. 이런 것은 쉬운 말씀. 어린아기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도 능히 받아먹을 수 있음.

-밥과 같은 말씀. 헌신. 희생. 결단. 사랑과 용서.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

 

3) 특별히 고린도 교회가 처한 문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영적 어린아이인 구체적인 이유.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시기와 분쟁. 사람들이 서로 시기하며 서로 나뉘어 다투고 있는 상황임. 시기라고 하는 것은 인류의 고질적인 죄악임.

-시기로 인해 아벨을 죽인 가인.

-시기로 인해 다윗을 죽이려고 안달이 난 사울.

-시기로 인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대제사장들.

 

시기는 참으로 뿌리깊은 죄악. 여러분 가운데 시기가 있고 이 시기로 인해 다투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 어린아이라는 증거.

 

시기는 영혼을 망치고 황폐화 시킴. 갈수록 커지는 것이 시기이기 때문. 희랍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루는 헤라클레스가 길을 가다 괴물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헤라클레스는 그 괴물을 두들겨 쓰러뜨린 후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데 조금 후 34배 더 커진 괴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더 센힘으로 괴물을 때려 눕혔는데 이번에는 더 커진 괴물이 나타났다.

때리면 때릴 수록 더 커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자 헤라클레스는 아테네를 찾아갔다. 그때 아테네는 말했다.그 괴물의 이름은 시기,질투인데 때릴게 아니라 못본 척 놔두면 저절로 작아져 힘을 못 쓴다네

사울을 보라. 나중에 미치광이처럼 되지 않는가? 시기에 눈 멀어 자신의 주이신 예수님을 죽이는 대제사장들을 보라.

 

 

2. 무엇으로 인한 분쟁이었나?

 

1) 세명의 탁월한 지도자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시기와 분쟁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세명의 지도자들이 있음. 이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시기와 분쟁인 것임. 이 세명의 지도자는 모두 탁월한 사역자들임.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 1)

 

-바울

원래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남.

아나니아의 기도를 받은 후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됨. 그는 많은 개척을 하는 개척적인 전도자였음. 그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나타남.

 

-아볼로

성경 학자.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18)

 

-베드로

예수님의 수제자

기도에 열심. 앉은뱅이 일으킴.

한번 설교에 삼천명을 회개케 했던 능력있는 설교자.

 

정말 부러운 주님의 종들임.

 

2)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파당을 나눈 사람들

 

그런데 바로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문제가 발생함.

다시 4. “4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무슨 말인가? 어떤 이는 자신이 바울에게 속하였다고 함. 어떤 이는 아볼로. 어떤 이는 게바. 그러니까 다른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은 그리스도파라고 함. 참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

 

그것으로 파당을 형성. 이용

 

학연. 지연.

 

3) 선한 것을 악으로 이용-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걸리버 여행기는 누구나 다 어려서 즐기던 이야기이다. 18세기 영국의 풍자적인 문인이었던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난쟁이 소인의 나라와 아주 큰 거인 나라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 작은 사람들의 나라에서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 수만 명의 목숨이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된 일이 있다.

왜 이 작은 사람들의 나라인 소인국에서 싸움이 나서 수만명이 비참하게 죽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서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그렇게 많은 생명을 희생치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그 싸움의 발단은 삶은 계단을 깨뜨려 까먹을 때에 계란의 넓은 쪽 끝을 먼저 깨뜨려서 까먹느냐? 아니면 좁은 쪽의 끝을 먼저 깨뜨려서 껍질을 까느냐?라는 문제 때문에 두 편으로 의견이 갈라져 결국에는 치열한 싸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한 편은 넓은 쪽부터 깨뜨려 까는 것이 옳다고 하고. 다른 편은 좁은 쪽부터 깨뜨리는 것이 맞다고 서로 주장을 하다가. 마침내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그렇게 많은 희생을 당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 일이다. 반면에 우리의 가정 생활이나 또는 교회 생활에서 이러한 일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 글은 조나단 스위프트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그토록 골몰하고 문제를 삼고 싸우기도 하는 일을 비웃고 풍자한 것이다.

정말 나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참된 일을 진정 중요한 것으로 알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의 진실한 생애의 뜻으로 볼 때에는 별 것 아닌 것을 위해서 나의 정력과 시간을 다 써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3. 해결책-오직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셨다

 

1) 분쟁을 기회로 가르침을 주는 바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룸

 

초대교회. 문제가 다는 아님.

 

2)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분명한 이해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3) 모든 것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결론

 

하나님께만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