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청소년 문제

밥먹자 해도 안듣고, 게임 끄면 울고불고… 매일 아기와 전쟁

안희환2 2012. 2. 1. 15:23

밥먹자 해도 안듣고, 게임 끄면 울고불고… 매일 아기와 전쟁

  • 박진영 기자
  • 입력 : 2012.01.31 03:05 | 수정 : 2012.02.01 07:32

    [요람부터 게임 중독]
    처음엔 'IT 신동'으로 착각 - 한글 익히고 퀴즈 풀어 '대견'
    점차 폭력·선정적 게임 옮겨가… 언어구사 능력은 되레 뒤처져
    또래 친구들과도 안 놀아 - 그림책 주니 손가락으로 터치
    반응 없자 신경질 내며 던져… 인형·장난감에도 눈길 안 줘

    서울에 사는 주부 이자영(가명·35)씨는 아이패드에 푹 빠진 딸 혜인(3)이에게 그림책을 쥐여줬다가 깜짝 놀랐다. 혜인이가 그림책을 손가락으로 터치하고 드래그하는 등 아이패드 다루듯 한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패드처럼 화면전환 같은 반응이 전혀 없자 신경질을 내며 책을 던져버리고는 떼를 쓰며 울었다.

    이씨가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준 것은 교육 목적이었다. 한글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의 퀴즈게임 등을 이용해 한글을 쉽게 익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혜인이는 하루에도 몇시간씩 한글 공부에 집중하고 IT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등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외출할 때나 손님이 왔을 때에도 아이패드로 조용히 '공부'를 하는 아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몇달 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또래 친구들이 집에 와도, 아이들이 인형·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놀아도 혜인이는 아이패드만 만졌다. 처음 반짝했던 한글 공부도 진전이 없어 또래에 비해 언어구사 능력은 되려 뒤처져버렸다. 요즘 이씨는 혜인이에게서 아이패드를 떼어놓기 위해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씨는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이 아이를 망친 것 아닌가 싶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스마트폰·태블릿PC·콘솔게임기 등이 확산되면서 우리 아이들이 게임에 점령 당하고 있다. 말을 배우고, 또래와의 공동생활을 배워야 할 유아들이 '요람'에서부터 게임 중독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기기를 만질 때부터 시간제한 등 관리를 제대로 하면 중독을 막을 수는 있지만, 부모들이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모르고 방치하는 사이 아이들은 글을 읽기도 전에 게임 화면이 주는 현란함에 현혹되면서 중독의 길로 접어든다.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게임을 하면 즐거움과 쾌락을 주는 호르몬인 도파민의 분비량이 증가하고, 뇌가 여기에 적응되면서 게임할 때 외에는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된다"며 "어른이 돼서도 본능처럼 게임을 찾게 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게임 시작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추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게임 시작 연령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유아 게임의 내용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인터넷꿈희망터 이형초 센터장은 "예쁘고 착한 게임이 가장 위험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실제로 어린 중독자들의 경우 '어린이용' 게임에서 시작해 점차 폭력성과 선정성이 강한 게임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잘 인식되지는 않지만 유·소아기의 게임 중독이 청소년이 된 후 심하게 발현되는 경우도 많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조모(14)군의 어머니 이모씨는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이라며 매일 가슴을 친다. 4세 때부터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뤘던 조군은 맞벌이인 부모가 방치하는 사이 어릴 때부터 메이플스토리, 스타크래프트 같은 중독성 강한 게임에 몰입했다. 조군의 아버지가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면 PC방으로 도망쳤다. 조군의 게임 중독 때문에 이혼위기에까지 몰렸던 이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군의 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다. 이씨는 "혼자 게임을 하게 하는 건 아이에게 칼을 맡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TV조선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