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뭐가 미안하시다고?/ 안희환
할머니께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시간 좀 낼 수 있어?”
“무슨 일 있으세요?”
“병원에 가야하는데 차 태워줄 수 있는가 해서.”
“그럼요. 언제예요?”
“월요일 아침.”
“예. 그때 제가 모시러 갈게요.”
“미안해서 어쩌지?”
“무슨 소리예요. 그날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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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다. 왜 할머니는 저토록 미안해하시면서 손자에게 전화를 하시는 것일까? 왜할머니는 그냥 당당하게 병원가야 하니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시간 내보라고 말씀하시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연락하시라고 수차례 말씀을 드렸는데 그게 도무지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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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할머니에게 큰 사랑을 빚진 사람이다. 부모님이 판자촌에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시는 동안 나는 할머니 품 안에서 자랐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로서는 어머니보다 할머니가 더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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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되면서 부모님이 계신 판자촌으로 갔는데 학교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녀야했다. 몸이 워낙 허약했던 나는 자주 아팠는데 온 몸이 고열로 시달릴 때마다 할머니를 많이 그리워했었다. 어린 나를 돌보는 것에서 벗어난 할머니는 서울로 가셔서 파출부 일을 하셨는데 힘들게 고생해서 번 돈이 우리 집으로 흘러들어왔다는 것을 안 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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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다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학교가 멀어서 학교 밑에 초라한 월세방 하나를 겨우 얻어서 살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그곳에 합류하신 것이다.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던 시기의 나에게 나를 세심하게 챙기는 할머니의 존재는 어쩐지 불편하기만 했다. 그 시절 할머니 속을 참 많이도 썩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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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지나 나도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할머니는 이제 온 몸이 낡아지셔서 제대로 거동을 하지 못하신다. 잠깐 걸으실 때조차 지팡이를 의지해야 겨우 걸으실 수 있는 상황이다. 소화를 제대로 못시키시기에 이전의 통통하던 몸매는 어디론가 도망가고 날씬한 몸매가 되셨는데 날씬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할머니를 보면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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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병원에 모시고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때 생각하면 속상해.”
“뭐가요?”
“잘해주지 못해서. 다 미안한 것뿐이야.”
“... ...”
“자꾸 옛날 생각이 날 때마다 안쓰러워.”
“할머니. 못 해 주신 것 없어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미안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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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다 쏟아부어주시고 더 주지 못하신 것을 가슴 아파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연락도 못 드리는 나의 이기심에 속상했다. 점점 약해져 가시는 할머니. 이젠 정말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후회를 덜 하기 위해서라도 자주 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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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죄송합니다. 그저 그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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