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금요설교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왕하4:1-7

안희환2 2011. 9. 9. 20:06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왕하4:1-7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도우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메마른 심령에 생수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절망하는 영혼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두려워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새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텅 빈 마음에 사랑으로 가득차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시는 나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그 비결을 배우고 그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오늘 본문의 줄거리 설명.

 

a. 선지자의 생도가 죽음

 

선지자의 생도. 선지자 후보생. 신학생. 그런데 적은 나이는 아님. 아내와 아이들이 있음. 그런데 그들을 남겨 놓고 죽은 것임.

 

b. 어려워진 선지자 생도의 아내와 아이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음. 그중 하나가 경제적인 어려움임.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목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함. 돈을 잘 번다나? 어떻게 그런 인식을 하게 되었는지 답답한 마음임. 절반 이상의 교회가 미자립교회임. 일년 경상비 2000만원 이하 교회. 생활비가 아닌 교회 전체 수입이 2000만원 이하이면 목회자 생활비는 얼마일까? 물어볼 필요도 없음.

 

300명 이상 되는 중견교회는 전체 교회는 10%도 안됨. 대형교회는 더욱 극소수.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이 간혹 개념 없이 터무니없는 생활비 받는 것을 보고 목회자들의 생활이 풍요롭다고 생각하니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음.

 

터놓고 이야기해서 돈을 버는 게 주목적이라면 뭐 하러 목회를 할까? 나라면 목회 안한다. 그리고 목회를 하는 이상은 돈이 내 삶의 목표일 수가 없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앞에 인도할 수가 있다면 아파도 좋고 가난해도 좋다. 물론 아픈 것보다 건강한 게 더 좋고 가난한 것보다 넉넉한 게 더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는 것이다.

 

목사도 그럴진대 신학생들은 오죽하겠는가? 전에 우전도사님 채장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음. 지금도 서울신대의 식당 음식조차 사먹을 돈이 없는 신학생이 있다는 이야기. 그게 현실임. 어렵고 힘들게 공부하는 신학생들이 많음.

 

가끔 속상한 소리를 들을 때가 있음. “신학생들은 배가 고파야해. 그래야 더 기도하지”. 이 말을 신학생 스스로, 특히 배 곪는 신학생이 하면 의미가 있음. 그러나 제삼자가 이런 소리 하는 것은 참 잔인한 모습임. 그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음.

 

지금도 그럴진대 엘리사 당시의 선지자 생도들은 오죽했을까? 특별히 그들은 산속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훈련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무슨 돈을 벌겠으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겠는가?

 

그러니 생도가 죽었을 때 남은 가족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임.

 

c. 두 아이가 종으로 팔려갈 상황

 

채주. 돈을 빌려준 사람. 돈을 못 받는 대신에 아이들을 종으로 삼으려 함.

어머니 입장에서는 피 눈물 나는 상황. 사명을 위해 남편은 선지자 생도로 훈련을 받았고 아내는 그 남편을 쫓아 헌신하며 희생하는 중인데 인생은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되어버린 것임.

 

그래서 엘리사를 찾아와서 요청한 것임.

 

 

여인은 결국 하나님의 채우시는 능력을 경험하였고 그를 절망으로 몰아가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채우시는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채우시는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가?

 

 

1. 하나님 앞에 찾아와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 앞에 찾아와야 한다.

 

1) 선지자 생도의 아내는 엘리사를 찾아옴

 

이것이 참 잘한 일임.

왜 잘한 일인가? 선지자를 찾아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일 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그 말씀 때문에 선지자 앞에 나오는 것이다.

 

여호사밧왕. 전쟁의 위급함 속에서 백성들에게 한 말.

하나님을 의지하라. 선지자를 신뢰하라. 이것은 선지자를 하나님처럼 받드는 것이 아니고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기에 그를 신뢰하라는 것임.

 

2)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을 때

 

우리는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임.

 

a. 우리의 노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음.

 

베드로의 노력.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는데 그물에 고기를 채울 수가 없었음.

 

b. 우리의 노하우라는 것도 한계가 있음.

 

고기 잡는데 있어서 베드로만큼 노하우가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 않은 전문가임. 그러나 그 조차도 무용지물일 때가 있음.

 

아히도벨. 모략이라면 따라올 자가 없음. 그가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 편에 서게 됨. 그런데 그 대단한 전문가가 기가 막힌 전략을 내 놓는데 아무 소용이 없음. 실패함. 고향에 돌아가서 목을 매고 죽음. 이게 사람의 한계임.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나님은 다윗편에 계시는데 자신은 엉뚱한 사람에게 붙어있으니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임.

 

c. 사람의 도움이라고 하는 것엔 한계가 있음.

 

나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런데 그 사람 너무 의지하다가는 큰코 다침.

변덕 없이 끝까지 도움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함. 또 변덕 부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도움이란 것 자체가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음.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146:3-5)

 

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찾아오는가?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라.

인간적인 계산에 의해 이것저것 머리 굴리는 것도 중단하라.

자신의 힘만으로 바둥거리는 것도 잠시 멈춰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사정을 다 하나님 앞에 아뢰라.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우리가 망하든 말든, 끝장나든 말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우리의 사연을 아뢰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미리 아시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확인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는 바디메오. 못들으신 척. 더 예수님을 찾는 바디메오. 사람들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님이 부르심. 바디메오는 예수님 앞에 옴. 그 눈을 뜨게 됨.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찾아와서 아뢰시라.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

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름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 없이 낙심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

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아멘

 

 

2. 그릇이 빈 상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채우시는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 앞에 찾아와야 한다. 둘째로 그릇이 빈 상태가 되어야 한다.

 

1) 하나님이 요구하신 그릇은 빈 그릇이다.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그릇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왜 그런가? 비어 있어야 하나님이 그곳에 무언가로 채워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강제로 그릇을 기울여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비게 만들 수 있다.

아니 전능하신 능력으로 아예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비게 만드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에게 빈 그릇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몫인 것이다.

 

2) 하나님은 사람들에게도 비우는 과정을 요구하신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광야에서의 생활이다. 그 고달프고 외롭고 힘겨운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는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모세

 

애굽에서 자신 안에 채운 것들이 너무 많음.

자신이 왕궁에서 자랐다는 신분의식.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자부심.

욱 하면서 사람을 칠 만큼의 혈기.

 

이 모든 것들이 광야에서 다 빠져나감. 그 빈 상태의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고 하나님의 능력이 채워짐.

 

간혹 가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시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자신은 정말 열심히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열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잊고 있음. 먼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삶의 요소를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채우실 수 없다는 점이다. 아까 말했듯 하나님은 강제로 비우실 능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대하실 때 인격적으로 대하길 원하신다. 우리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비우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3) 우리가 비워야할 것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비울 때 채워지는 것들은 무엇일까?

 

a. 야망을 비워야 한다.

 

야망은 내 욕심에 의거한 어떤 꿈이다. 과학자가 되겠다. 정치인이 되겠다. 유명한 목사가 되겠다. 교회에서 내가 이런 중직자가 되어야겠다. 부자가 되어야겠다. 예술가가 되어야겠다.

 

내 경우 탁월한 설교자가 되어야겠다. ? 그 동기를 살펴보아야 함. 명예욕. 인기욕. 그것을 발판으로 성공하고 출세하고. 하나님의 영광엔 관심이 없음. 교회의 영적 부흥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음.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음.

 

비전은 야망과 전혀 다름. 야망이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비전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것임. 야망이 욕심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비전은 헌신에 그 바탕을 둠. 그런데 내 야망이 가득 차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비전이 채워질 수는 없음. 야망을 비워야 비전을 채울 수가 있는 것임.

 

b. 죄를 비워야 한다.

 

통탄하는 것. 죄를 우습게 여기는 시대.

죄 때문에 기도 응답이 막히고. 죄 때문에 영적 성장이 중단되고. 죄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죄 때문에 교회가 망가지고 맥빠진 교회로 전락하는데.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히브리서의 말씀.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 범죄하게 하는 눈을 빼고, 손을 찍으라하셨는데.

 

음란. 탐욕. 불순종. 거짓말. 이간질. 수근거림. 기타 등등. 이런 것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상태로 단지 교회만 왔다갔다 함.

 

기억하라. 죄를 비워야 성령으로 우리 심령에 채워진다. 고전3:16-17.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c. 자신의 고집과 경험을 비워야 한다.

 

어떤 면에서 세상에 순한 사람은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과 고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표출방식이 각기 다르지만 아무튼 자기만의 경험이나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박종순 목사님 설교를 읽은 적이 있음. 담대하게 이렇게 설교함. 충신 교회에 왔으면 충신교회에 맞추고 박종순 목사에게 맞추라고. 왜 여기 와서 다른 교회는 어떻고 다른 목사님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옳은 이야기임. 저마다의 생각과 주장대로 교회가 움직이고 목사가 따라주어야 한다면 도대체 누구 기준에 맞추어야 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목사가 성도들의 여러 생각을 맞추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성도들이 목사에게 맞추는 것이 나은가? 물론 목사의 설교가 성경에 바탕을 둔 설교라는 대전제를 두고 말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줄다리기. 호르라기를 부는 사람. 왜 그렇게 부는거야? 더 빨리 불어. 아니 좀 천천히 불어. ? 내 생각대로 불지를 않네. 그러면 나는 줄을 당기지 않을거야. 그러면 지는 것임.

 

자기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고 자기 생각보다 느릴 수도 있지만 마음을 모아 함께 잡아당길 때 이길 수 있는 것임.

 

특별히 말씀을 들을 때는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다 내려 놓으라. 그래야 들려오는 말씀이 자신의 영혼에 채워지는 것이다.

 

d. 미움을 비워야 한다

 

세상 살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경험하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미움을 것이다. 강도가 높아지면 증오가 될 것이고 강도가 낮아지면 못마땅함이 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참 속상할 때가 많다. 왜 내 눈에는 이렇게 못마땅한 사람이 많은가 하는 것 때문이다. 이 사람에게는 이것이 못마땅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것이 못마땅할 때가 있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누군가가 미워지기도 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다가가지 않게 되고 찾아가지도 않게 되고 단절하게 된다.

 

여러분들은 그런 적이 없는가? 아무튼 나는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하나님 앞에서 계속 씨름을 한다. 그런 감정을 내 안에서 비우지 않는 한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내 안에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만 달라트 빚진 자와 100데나리온 빚진 자. 너희도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시리라.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친구. 가족. 처가식구. 시댁식구. 목회자. 성도. 이웃. 직장 동료. 선후배. 내게 손해를 주고 고통을 준 사람. 기타 등등.

 

무슨 이유에서라도 미움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용서가 내 안에 채워질 수 있다.

 

(희망 업그레이드 / 서순석님의 글)

윈스턴 처칠이 사관 생도 시절의 일입니다. 어느 날 그가 훈련소를 벗어나 외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생도들이 외출을 하게 되면 자신의 방 앞에 외출이라는 푯말을 붙여 놓고 외출하게 되어 있었는데, 처칠은 잠깐 다녀올 생각으로 그 푯말을 붙이지 않고 시내에 나왔습니다. 근데, 뜻밖에도 엄하기로 유명한 규율 부장을 만났습니다. 처칠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외출푯말을 붙이지 않은 채 외출을 하면 규율 위반이 되고 규율 위반에 따른 벌칙이 엄했기 때문입니다. 처칠은 모든 일을 뒤로 미룬 채 부대로 달려갔습니다. 규율 부장보다 먼저 부대에 들어가서 자신의 방 앞에 외출푯말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헐떡거리며 방 앞에 당도한 처칠은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그곳에는 외출푯말이 얌전히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규율 부장이 처칠보다 먼저 부대로 돌아와 외출푯말이 없는 것을 보고 붙여 놓았던 것입니다.

 

그 후 처칠은 규율 부장에게 심한 꾸중을 듣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규율 부장으로부터 호출도, 꾸중도, 책망도 없었습니다. 부대 내에서 규율 부장과 마주쳤을 때도 씽긋 웃는 것으로 지나칠 뿐 외출 사건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처칠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정직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생애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영국 수상으로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규율 부장이 처칠을 불러 늘 하던 대로 심한 꾸중을 하고 벌칙을 주는 것으로 그쳤다면, 그에게 자극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의 마음, 관용의 마음이 처칠에게 크나큰 자극과 결단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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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참 부족한 부분. 내 안에 있는 못마땅함을 비우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보다 더 심한 것들까지 용납할 수 있는 목사가 되도록 기도해주시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용서가 가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여러분도 함께 그렇게 변화되어 나가자.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채우시는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 앞에 찾아와야 한다. 둘째로 그릇이 빈 상태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1) 그대로 순종하는 선지자 생도의 아내

 

순종이 없었다면 채우시는 기적은 없다.

 

여인의 순종.

그릇을 빌리라.

많이 빌리라.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라.

빈 그릇에 기름을 부어 채워라.

 

여인이 이 어느 것 하나라도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빈 그릇이 채워지는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임.

 

사실 그런 순종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님. 우리가 문자로 읽지 않고 여인의 삶을 우리에게 적용시켜서 생각하면 여인의 상황에서 그런 순종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음.

 

극심한 가난. 살 집이 없는 정도가 아님. 생계가 어렵고 힘든 정도가 아님.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두 아들이 노예로 팔려가야할 상황임. 그 절박함 속에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는데 도움이 되는 말이나 행동은 없는 것임. 격려해주는 것도 아니고 위로해주는 것도 아님. 다른 힘 있는 사람에게 연결해 주겠다고도 안하고 자식들 팔려가지 않도록 자신이 나서보겠다는 말도 없음. 생도들로부터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모금 운동을 벌여서 조금이라도 돈을 마련해보겠다고도 하지 않음.

 

그러더니 느닷없이 빈 그릇을 잔뜩 빌려서 집에가 문을 닫은 다음 조금 남은 기름병의 기름을 빈 그릇들에 부으라는 말만 하는 것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서러울 수 있음. 열받을 수 있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음. 도전할 수 있고 반항할 수 있음. 한바탕 욕이라도 해주고 가버릴 수도 있음.

 

그러나 그랬다면 그것으로 끝임.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고 평생 한을 품고 살았을 것임. 틈나는대로 엘리사에 대한 원망만 했을 것임. 그러나 이 지혜로운 여인은 엘리사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였음. 그리고 빈 그릇이 채워지는 기적을 맛보게 된 것임.

 

2) 하나님의 축복으로 채움 받은 사람들

 

그들에게는 탁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a. 순종하여 요단강에 발을 내디딘 제사장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순종할 수 없어. 순종하면 난 죽어. 하나님을 믿어라. 아무려면 하나님이 나를 죽이시려고 순종하라 하실까? 순종하면 죽을 것 같지만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가 나타남.

 

b.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은 소경

 

진흙으로 눈에 처바르더니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지금 소경 데리고 장난하나? 그러지 않음. 순종했더니 눈이 떠짐.

 

c. 마지막 양식을 내 놓은 사렙다의 과부

 

엘리야가 떡을 먼저 자신에게로 가져오라 했을 때. 이런 되먹지 못한 인간. 내 자식의 마지막 양식을 내놓으라고? 이것 없으면 우린 일찍 죽어.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내놓을 수 없어. 이러지 않음. 순종했을 때 기근 동안 먹고 살 양식을 하나님이 친히 공급하심.

 

다시 말한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채움 받은 사람들에게는 탁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축복은 순종으로. 구원은 믿음으로 축복은 순종으로. 구원은 믿음을 축복은 순종으로.

 

3) 우리에게는 순종함이 있는가?

 

“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28)

 

링컨의 십계명

제일은,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 생활에 힘쓸 것이다.

제이는,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제삼은, 나는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바지께 날마다 겸손히 기도할 것이다.

제사는, 나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

제오는,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이다.

제육은. 나는 연악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이다.

제칠은,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그 분께만 영광을 올려 드릴 것이다.

제팔은, 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평등하다고 믿는다.

제구는,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이다.

제십은,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링컨의 삶을 요약해 놓은 것. 한 마디로 말하면 순종의 삶. 하나님은 그의 인생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채워주심. 그러니 가난하고 공부도 못한 링컨이 위대하게 쓰임받는 것이다.

 

소명/ 헨리 블랙커비, 케리 스키너

 

27세의쉐릴 올링거는 농구에 관해선 전문가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농구 선수가 되고 싶어 했던 쉐릴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뛰어난 선수로 활약했고, 이어 유럽 농구 리그전에서 뛰기도 했다. 한편 크리스천 체육인 협회(FCA)에 가입하여 다른 크리스천 체육인들과 교제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한 선교사가 쉐릴에게 크리스천 체육인들이 국제적으로 스포츠 전도를 할 수 있도록 FCA를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 쉐릴은 속으로 말했다. ‘하나님, 참 좋은 생각이네요. 하지만 전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하지만 쉐릴은 그때까지의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그 사역을 위해 자신을 인도하시고 준비시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만 믿고 국제 경기 연맹(ISF)을 창설했다. 하나님은 바로 그 해 마다가스카르로 간 첫 번째 스포츠 선교 여행에서, 그분의 계획과 그녀의 순종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보여 주셨다.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 후, 나는 상대편 여자 선수 중 한 명에게 그 나라 말로 된 성경을 주면서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 전했다. 그것은 내가 설교나 찬양을 해서가 아니라 농구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도하는 것이 불법인 나라는 있지만 농구로 관계 맺는 것이 불법인 나라는 없다.”

 

그 후 4,000명이 넘는 ISF 자원 봉사자들이 70개국에서 500개 이상의 선교 프로젝트를 마쳤다. 한 농구 선수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라고 응답했기에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순종하는 한 사람의 인생 속에 복음 증거의 열매를 채우심.

 

이와같이 큰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우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순종임.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함.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공부. 설교. 암송. 묵상. 읽기.

 

때로는 기도 중에 감동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때에도 순종이 필요함.

 

<오늘의양식, 98-07-20> 에 실린 글

 

나는 어느 날 아침 무릎을 꿇고 부엌 바닥을 닦으면서 겪었던 내 마음속의 갈등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캐롤이라는 젊은 엄마를 찾아가 봐야 한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강한 느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오후쯤 찾아가 보기로 작정하고는 "그러나 먼저 이 바닥 청소부터 끝내야지."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재촉하는 것이 점점 더 절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바닥 청소만 끝내면 곧 캐롤에게 가보겠습니다."라고 주님께 약속드렸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닥 청소를 끝내지 말고 바로 지금 가라고 하시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의지력과 진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하려다가 무수한 기회들을 잃어버린 것을 인정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알겠습니다. 주님 지금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캐롤은 나에게 문을 열어 주면서 눈물 섞인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당신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몰랐지만 하나님이 알고 계셨고, 내가 주님께 순종한 것이 결국 캐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채우시는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 앞에 찾아와야 한다.

둘째로 그릇이 빈 상태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나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