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오후설교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히12:1-3(2011.7.24 주일오후예배 설교)

안희환2 2011. 7. 24. 12:59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히12:1-3(2011.7.24 주일오후예배 설교)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신섭 장로님. 대단한 분. 교회에 초대할 생각임. 워낙 바쁜 분이라 시간 내기 어렵겠지만 다행히 바쁜 분들 부르는 은사가 있음.

 

이분이 한 말. 게으른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전적으로 동감.

공부.

직자

사업.

신앙도 마찬가지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아침형 인간.

새벽형 크리스천.

 

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6.

 

그러면 부지런한 것만이 성공적인 삶의 모든 것이냐? 그렇지 않음. 그것은 기초일 뿐임.

성경에서는 성공적인 인생, 혹은 승리하는 삶에 대한 교훈을 분명하게 주고 있음.

 

 

오늘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해야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자.

 

1. 승리를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1) 경주에서 이기려면 가벼워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먼저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선 가볍게 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빨리 승리하려면 빨리 달려야 하고 빨리 달리려면 가벼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옷을 잔뜩 껴입고서 달리는 100미터 선수를 생각해보라.

아령 하나를 들고서 달리는 마라톤 선수를 생각해보라. 그다지 무겁지 않은 아령일지라도 긴 거리를 달리다보면 그것이 커다란 짐이 된다. 힘이 들게 만들고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맷돌을 짊어지고 수영하는 수영 선수를 생각해보라.

 

아무리 대단한 기량을 가지고 있고 또 수없는 수상경력을 가진 선수라 할지라도 무거운 사태로는 절대로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하려면 가벼워야 하는 것이다.

 

2) 가벼우려면 벗어버려야 한다

 

그러면 가볍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거운 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이것 역시 당연한 대답이다. 가볍길 소원하면서 현재 입고 있거나 들고 있는 것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그 소원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원은 있으나 그 소원을 위해서 결단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은 없는가? 소원은 가지고 있으나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벗어버려야 할 것을 꼭 쥐고 잇는 분 말이다.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기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무거운 것을 그대로 짊어진 채 그것이 아까워 벗어버리지 못하는 분 말이다. 부디 소원한다. 나는 예수비전교회 성도들이 다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 부디 경주에 올무가 되는 것은 벗어버리시기를 바란다.

 

3)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것들은?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는 조금 성질이 다르다. “모든 무거운 것은 운동 선수가 경주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 체중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얽매이기 쉬운 죄란 경주를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연약성을 말한다. 그러나 경주를 하는데 방해되는 체중이든, 경주의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연약성이든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 모두다 경주에 있어 벗어버려야 할 방해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인생의 경주를 하는데 벗어버려야 할 방해물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그런 방해물에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1) 물질에 대한 욕심

 

먼저 물질에 대한 욕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벗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경주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물질 즉 돈이란 것은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에는 평생 목회를 한 목회자, 그리고 지금 목회를 하고 잇는 목회자들 중에서도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지 모른다. 하긴 종교지도자들의 돈 욕심은 뿌리 깊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그랬으니까.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16)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

 

물질에 대한 경고는 성경에 또 나타난다.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부디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벗어버리시기를 바란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가고해 볼 것이 있다. 똑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도 한 사람을 돈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구분점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신이 잘 먹고 잘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돈을 버는 자는 돈을 사랑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치 있는 곳에 쓰기를 원하는 사람을 돈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신앙생활에 걸림이 되는 때에도 돈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자이고, 신앙의 걸림이 될 때 돈보다 신앙을 택하는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질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울 줄 모르는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기억하며 도울 줄 아는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여러분 어떠하신가?

 

사실 교회 안에서도 물질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 이 교회 저 교회 떠도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교회생활 잘하는 것 같다가 건축 때가 되면 슬그머니 그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아예 물질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개척교회를 아예 안가고 부담없이 예배만 드릴 수 있는 큰 교회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십일조에 대한 설교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왜 교회에서 자꾸 헌금을 강조 하냐면서 시험 드는 사람도 있다. 우리 교회는 헌금 강조를 안 하는 게 교회 방침이지만 그러나 십일조 설교를 싫어하는 사람을 두둔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신앙생활의 기존이기 때문이다. 사실 다 하나님의 것이고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는지 확인하시는 것이 십일조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린다고 절대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다른데 돈 나갈 것 막아주시고, 또 다른 곳에서 공급을 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질에 대한 욕심이 꽉 차서 교회에서 물질만 결부되면 시험 드는 사람은 절대로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부디 여러분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벗어버리시기 바란다.

 

(2) 시기와 질투

 

시기와 질투라는 것도 신앙의 경주에서 커다란 방해물이다.

 

그런데 생각 밖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려 넘어져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모른다.

 

시기와 질투 때문에 교회에서, 또 개인적으로 해야 할 봉사를 안 한다. “너 그렇게 한번 해봐라. 난 구경만 할 테니까. 너 혼자 열심히 해봐라. 잘되나 보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때 마귀는 옆에서 잘한다고 박수를 치고 있다.

 

여러분이여. 목사인 내가 봐도 시기와 질투 때문에 뒤쳐지는 것이 보이는데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겠는가?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는가? 가뜩이나 교회에서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 이때에 말이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깨달으라고, 정신을 차리라고 경고를 하실 것이다.

 

또한 무슨 이유로든 상대방을 시기하는 것은 영적인 어린아이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랑치 못하고 시기할 때 그 속에서 모른 요란과 악한 일들이 발생을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14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3)

 

시기가 심해지면 사람이 참 악해진다. 여러분. 대제사장들이 왜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했는지 아는가? 시기 때문이다.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5)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세상 경주와 신앙의 경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세상 경주는 시기심도 필요하다. 어쨌든 남을 밟아야 이길 수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의 넘어짐이 내가 성공할 기회가 되지 않는가? 그러나 신앙인의 경주는 다르다. 신앙인의 경주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더욱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씀한다.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

 

사랑하는 여러분. 시기와 질투 때문에 경주에서 자꾸만 뒤쳐지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란다. 부디 시기와 질투를 벗어버리시기 바란다.

 

(3) 옛 습관 혹은 옛 사람

 

또 한 가지 인생의 경주에서 방해가 되는 것은 옛 습관 혹은 옛사람이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면 옛 습관을 쫓는 옛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함부로 말하는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주저 앉아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술과 담배 문제를 벗어버리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사람에게 결코 유익할 것이 없으며 더 나아가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모범이 되지 못하면서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음란한 버릇과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인터넷이나 잡지를 통해서 정신을 더럽히고 순결치 못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어떤 사람은 게으른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게으른 사람은 예배생활도 기도생활도 말씀생활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 되는 것이다.

 

다 옛 습관, 옛사람의 모습들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옛사람을 온전히 벗어버리시기를 축원한다. 자기 힘으로 안 되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능력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자유케 해주실 것이다.

 

(4) 세상적인 관심과 미련

 

또 한 가지 우리의 신앙 경주에 걸림이 되는 것은 세상적인 관심과 미련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재미있고 즐거우며 우리의 마음을 빼앗을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고, 힘이 없어서 그렇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껏 내키는 대로 해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돈과 권세를 쫓아 그리도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 있다. 매력적으로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이 그 결과까지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약을 하면 참 좋아 보인다. 용기도 생긴다. 기분도 좋아진다. 보고 싶은 것들이 보이고 듣고 싶은 것들이 들린다. 환각에 의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결국은 뇌의 파괴이다.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마약만이 아닌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모든 즐거움도 마찬가지이다.

 

놀러 다니는 재미, 타인을 씹으며 수다 떠는 즐거움, 고스톱 치는 기쁨, 아무 것도 안 해도 그저 함께 어울리면서 느끼는 알지 못할 충만감(곧 재충전해야 하니까) 등등.

 

그러면서 교회는 점차 멀어지는 것이다. 일주일에 겨우 한번 고개 내밀고 인사 한 후 다시 세상을 향하여 출발! 그리고 교회로 올 때는 온갖 고뇌 짊어지고 왜 이리 신앙생활이 힘드냐면서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교회에 오면서도 세상 미련 그대로 가지고 아쉬움을 안은 채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이니 주일은 지켜야겠고 주일을 지키려니 놀러 다니고 싶고, 그러니 신앙생활이 짐이 될 수밖에...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기억하라. 세상 것에 미련 두어봐야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임을 말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 2)

 

세상 미련을 못 버리고 뒤를 돌아본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었건만 그러고 보면 오늘날 교회에는 영적 소금기둥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부디 예수비전교회에는 그런 소금기둥들이 하나도 없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세상에 대한 관심과 미련을 벗어버릴 수 잇기를 축원한다. 우리의 세상의 향한 주관심사는 오직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5) 걱정과 근심

 

인생의 경주에서 방해물이 되는 것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걱정과 근심이란 것이다.

 

예수님의 네 가지 밭의 비유 중 가시떨기의 비유에서 보이듯이 걱정과 근심은 잘 자라나던 신앙을 눌러서 더 이상 자라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사실 염려와 근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신앙성장과 신앙경주에 방해물이 된다. 마음을 둔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러분이여. 마음이 둔해지면 지금 무엇이필요한지 못 느끼게 된다. 마음이 둔하여지면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 못 느끼게 된다. 꽝하고 한번 얻어맞은 느낄 뿐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둔해지면 심지어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무덤덤해진다. 그날에 심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야한다는 것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마음에 둔하여지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염려와 걱정인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

 

생활의 염려. 술취함과 방탕함. 이 두 가지와 함께 취급.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긴급함이란 경주에 필요한 것이다. 오늘도 달릴 수 있고 내일도 달릴 수 있고, 내일 안 되면 모레라도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운동선수는 아무도 없다. 지금 이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안 된다는 긴박성을 가지고 경주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경주,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주는 언제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주의 때가 지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 그때가 곧 우리 주님이 오시는 날이다. 그런데 생활의 염려에 찌든 사람은 너무 그것에 정신을 빼앗긴 나모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선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인생의 경주 역시 자꾸 미루거나 회피하는 등 점점 느슨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부디 모든 염려과 걱정을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란다. 경주의 방해물인 염려와 근심을 벗어버리시길 축원한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

 

 

자 정리해보자. 승리를 위해서는 가볍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방해물을 벗어버려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신앙 경주, 혹은 인생의 경주에서 방해가 되는 것들 중 우리의 모습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는 어떤 것들을 벗어버려야 하는가? 첫째로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벗어버려야 한다. 둘째로 시기와 질투를 벗어버려야 한다. 셋째로 옛습관과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넷째로 세상적인 관심과 미련을 벗어버려야 한다. 다섯째로 걱정과 근심을 벗어버려야 한다.

 

여러분들은 이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상태로 달음질하여 경주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한다.

 

 

2. 승리를 위해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분. 경주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1) 승리를 위해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음질하는 자는 도달해야할 목표를 향해 뛰어야 한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엉뚱한 곳을 향하여 뛴다면 그는 승리자가 될 수 없다. 향방 없이 뛰는 것은 다만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콜롬비아의 축구선수로 기억하는데. 골인을 시키고 그 덕분에 자기네 나라 사람에게 총을 맞아 죽음. ? 자살골을 넣었다고. 무조건 고인을 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권투선수도. 주먹을 휘두르되 그냥 휘둘러선 안 된다. 목표가 분명해야 함. 허공을 치면 경기에 아무런 유익이 없음. 얼마만큼 휘둘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목표를 정확히 때렸느냐가 중요한 것임. 허공을 치면 힘이 더 뿐 아무런 유익이 없음.

 

사람들이 세월을 허비하는 것 인생의 목표가 없기 때문

젊은이들이 타락하고 어리석은 일들에 빠져드는 이유. 인생의 목표가 없기 때문임.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방향 설정이 없음. 그러니 그저 내키는 대로 즐거운 대로 친구 따라 살아가는 것임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유혹을 받고 세상에 마음을 잘 빼앗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인생의 목표가 없기 때문.

 

목표란 삶을 잡아주는 힘이다.

 

여러분은 살아가시면서 목표를 정하시고 살아가시고 바란다. 때론 하루 동안, 때론 일주일의 목표, 때론 1년의 목표,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평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너무도 필요한 일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농촌에서 태어나 16세에 디트로이트로 가 유명한 토마스 에디슨(ThomasEdison)이 세운 회사의 직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열심히 일했다. 헨리 포드는 점점 인정을 받았다.

그러한 그가 한번은 에디슨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에디슨에게 한 가지만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가솔린이 기계를 돌릴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을 들은 에디슨은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소."

포드는 에디슨의 이 한 마디 대답에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자동차 엔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고 2, 3년이 지났으나 실패했다. 다시 5, 6년이 지났으나 또 실패했다. 7, 8년이 지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드디어 13년 만에 헨리 포드는 자동차 엔진을 만들고야 말았다.

 

슈바이처의 인생 목표.

 

뢴트겐의 목표.

 

여러분이여. 부디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시라.

 

2) 이 목표는 계속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계속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사람들의 연약함 중 하나.

 

몇 번 정도는 도전함. 그러나 그것이 형통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음. 그러면 그 다음에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고 더 이상 목표를 세우지 않음. 결국 저마다 몇 번씩은 목표를 세우지만 실패의 과정에서 이제는 목표를 세울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

 

-실패는 누구나 한다는 사실

-몇 번 실패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일어났느냐 아니면 그냥 주저 앉았냐가 중요하다는 사실.

-계속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설사 이루지 못했더라도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던 사람보다 훨씬 많은 성장을 한다는 사실

-따라서 계속적으로 목표를 다시 세워나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결단하라

 

링컨에 대한 이야기

이 남자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불렸다. 그의 어머니는 사생아로서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는 네 살 때 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아홉 살 때 어머니, 열여덟 살 때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그의 아내는 거의 정신이상자였으며 두 아들도 그의 품에서 죽었다. 그는 전쟁에 참가했다가 친구들의 죽음을 무수히 목도했다.

이 사람은 정치에 나섰으나 연거푸 낙선의 고통을 겪었다. 7번이나 떨어졌으니 보통이 아니다. 참으로 그의 인생은 온통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가 실패했을 때 대처법

"난 낙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 다음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곱게 다듬고 기름도 듬뿍 발랐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이제 곧바로 또 시작을 했으니까 말이다. 배가 든든하고 머리가 단정하니 내 걸음걸이가 곧을 것이고 내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힘이 찰 것이다. 이제 나는 또 시작한다. 내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 힘을 내자. 아브라함 링컨!"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목표를 세우시고 도전하시기를 바란다.

 

3) 우리의 경주 목표는?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된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대답은 예스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되면서 가장 중요한 목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평가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보다 더 우선한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목표인 것이다.

 

오늘 본문에도. 경주를 말하면서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를 바라보자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믿음의 주

우리의 유일한 믿음의 대상.

석가도 공자도 마호맷도 아니고

세상도 주목도 아니고

물질도 명예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만이 믿음의 주이시다

 

그러니 우리 인새의 목표가 되실 수 있음.

 

-온전케 하시는 분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시다

허물 많은 베드로를 누가 온전케 하셨는가?

의심 많은 도마를

계산적인 빌립을

비난받는 세리 마태를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인데 주님께서 그들을 다듬고 깎아서 쓸 만한 일군으로 삼으신 것임.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임. 모자란 나와 여러분을 온전히 세우시는 예수. 그러나 나와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가 되실 수 있음.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던 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가 벌거벗겨짐.

그가 침 뱉음 당함

그가 매를 맞음

그가 멸시와 조롱을 당함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

 

누구를 위해서? 나와 여러분을 위해서. 그러기에 구원받은 우리. 그분은 바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 피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이다. 예수 말고 누가 나를 위해 죽겠는가? 설사 죽어도 예수의 피 말고 그 누구의 피가 내 죄를 씻어주고 나를 구원하겠는가? 오직 예수님이시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예수는 날 위해 죽으셨다. 그러니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실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수는 지금 우편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계신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는 어떤 분.

고난 죽음 지금은 보좌 우편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앉아 계시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되실 수 있으신 분이다.

 

게다가 예수라는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성취 후의 공허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예수라는 목표는 우리로 영원한 상급을 받게 한다.

예수라는 목표는 우리를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럽게 만든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인생의 목표를 완전히 수정. 정말 고상한 목표는 예수님이심을 알았기에.

 

바울의 고백

바울의 목표: 예수 그리스도. 3.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3)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3)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길 원한다. 그리고 더 원하기는 그 최종 목표에 예수님이 계시기를 원한다. 참으로 이 예수비전교회 예수 닮은 사람들이 가득하길 소원한다.

 

3. 승리를 위해 이겨야 할 과정이 있다.

 

몸을 가볍게 했다.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따름.

 

1) 경주에는 반드시 시련이 따른다

 

이렇듯 경주에는 반드시 시련이 따름.

 

공부.

주변을 가지치기. 가볍게 한 것

대학이라는 목표 설정.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님. 달음질 즉 공부를 시작하다 보면 만만치 않음. 힘들다는 이야기임.

 

마라톤. 가볍게 함. 목표도 있음. 그런데 달리는 과정이 너무 힘들음.

 

그래서 절망

자포자기

 

2) 시련은 이것은 누구나 겪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할 것. 시련은 누구나 겪는 것.

 

심지어는 목회도 마찬가지. 아무런 시련도 겪지 않고 쓰임받는 사람은 없음.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

김충기 목사님. 교인에서 4분의 일도 안남음.

 

 

신앙인도 마찬가지. 특별히 신앙의 경주를 하려는 사람은 시련을 겪게 되어있음. 그러나 기뻐하시라. 그것은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임. 내가 잘못하거나 실수하거나 죄를 지어서 당하는 고통 말고 주를 위해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당하는 고통과 시련일 겨우 그것은 우리 신앙의 산 증거인 것임.

 

신앙심이 있는 흑인이 백인집의 하인으로 있었다. 그 주인은 사냥을 좋아하여 늘 흑인을 데리고 다녔다. 하루는 사냥을 가면서 주인이 흑인에게 물었다. "너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늘 시련을 당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이 없는데."

흑인이 대답했다.

"주인이시여, 노하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지금 저기에 있는 꿩을 쏘아 한마리는 즉사 하고 한마리는 한쪽 다리가 맞아 살겠다고 절름발이가 되어 달아난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것을 먼저 가서 잡으시겠습니까?"

주인이 대답했다.

"그것은 물론 산놈을 따라가 잡을 것이 아니냐?"

그때 흑인이 대답을 했다.

"옳습니다. 주인님은 이미 그 영이 죽었으니 마귀가 잡으려고 시험할 필요가 없고, 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니까 마귀가 잡으려고 별별 시험을 다 할겁니다."

 

3) 시련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에는 중요한 단어가 나옴. 이 단어는 너무 너무 중요. 그러나 사람들은너무 너무 싫어함. 무엇인가? 인내

 

도대체 언제까지 참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이것이 사람들의 반문임. 아니 바로 나의 반문임. 도대체 언제나 역사하시겠습니까? 나는 분명 하나님을 믿음. 역사하실 것도. 그럼에도 때로 조급한 마음에 이런 탄식이 나옴.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간단하다. 인내하라. 인내로 너희 앞에 다한 경주를 경주하라.

 

나중에 유명해졌으나 초기의 젊은 시절에는 실패를 많이했던 소설가가 있었다. 신문사 공모전에 출품한 자신의 글이 낙선되자 그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원고뭉치를 불살라버리고는 건강도 회복하고 자신이 정말 글에 소질이 있는가를 재고해 보기 위해 한적한 전원을 찾아가 요양을 했다.

어느날 그가 생각에 잠겨 들판을 들어가고 있다가 돌들이 잔뜩 쌓인 밭에서 괭이질을 하는 농부를 보았다. 이 사람의 눈에는 그 밭이 돌과 잡초로 인해 황폐할 때로 황폐해 있어서 괭이질을 아무리 한다 해도 식물이 자랄 만한 땅으로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그 농부는 계속햇 괭질을 하고 있었다.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 쳐다보는 사람이 지칠만큼. 그러나 그 농부는 인내를 가지고 괭이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괭이질은소설가가 지켜본 그날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부질없어보인다는 자신의 생각을 농부에게 말했다.

그때 그 농부는 그 사람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닙니다. 저기 고추가 매달린 밭들 보이지요“.

보니 참 좋은 땅에 고추가 심겨있는데 탐스럽겓 고추들이 매달려 있었다. 농부는 계속 말한다.

저 땅들도 처음에는 이보다 더 한 땅이었죠. 그러나 나의 아버지께서 저 많은 땅을 쓸모 있게 했습니다. 그러니 나는 이 땅을 쓸모있게 할 것입니다."

이 농부의 말에 이 사람은 실의에 가득찬 마음에 큰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로 하여금 훌륭한 소설가가 될수 있게 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내심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시기를 바란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말이다.

 

특별히 신앙의 경주를 하는 우리에게는 인내의 모법이 계시지 않은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목표이시면서 동시에 인내의 모법이 되시는 분이시다.

 

오늘 본문에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를 생각함으로 이겨라

맞는 말. 내 자신이 늘 체험하는 것이기도 함.

 

내 성격이 강해 보이지만. 사실 여릴 때가 많음. 속으로 울때가 참 많음. 하나님 사람 변화되는 것이 왜 이리 어렵습니까? 일기에도 그런 글.

채전도사님이 내 증인. 아내가 내 증인.

 

그때마다 생각하는 것.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참으셨는가? 이 거역하던 인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는가?

 

내가 돈 벌겠다고 신앙 잃어버리고 돈에 환장했을 때 예수님은 얼마나 나를 참으셨는가?

어린 나이에 남의 것을 훔칠 때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혹은 혼자 다니면서 신앙인의 삶을 저버렸을 때

전도사라고 목에 힘주고 권위주의에 젖어 있었을 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못나고 부족하며 자격미달인 나를 얼마나 참아주시고 계신가?

 

안희환아. 사람들 세우는데 힘이 드냐? 주님이 너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참으셨는지를 생가해라.

 

맞습니다. 주님.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벗어버려라

돈에 대한 욕심대한 관심과 미련

시기와 질투

옛습관 혹은 옛사람

세상에

걱정과 근심

 

그리고 목표를 세워라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공통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옛 닮는 것.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인내. 특별히 힘들어 낙심이 될 때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신 예수를 생각하라.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힘들고 어려우신가? 답답하신가? 날마다 예수를 생각하자.

 

어찌보면 예수님 만큼 답답한 인생도 없었음.

 

가난한 집 아들. 목수의 아들.

 

아버지는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의 장남.

 

30세까지 열심히 일해야 했음. 그러니 학교는 언제 다니겠나?

 

30세쯤 되어 방랑 설교자의 삶을 시작. 그러면서 종교지도자들과의 잦은 충돌. 헤롯당에게 받는 미움. 미쳤다고 붙잡으러 나온 친족들. 동생들마저 자기 형을 이상하게 보고.

 

12제자를 골랐는데 그리 마땅치 않음.

 

결국 대제사장들의 간계, 군중의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소리, 총독 빌라도의 무책임한 재판으로 사형선고 받음.

 

십자가 위해 벌거벗은 채 못박혀 있는 예수.

완전히 버림받은 예수. 예수께서 세상에서 남기는 유일한 12제자중 하나는 예수를 팔았고, 하나는 계집종 앞에서 예수를 부인했고, 나머지는 다 도망을 가버렸고... 완전한 패자 예수. 완전한 낙오자 예수. 그러나 묵묵히 참으신 예수

 

 

여러분이여. 묻는다. 예수님을 실패하셨는가? 인생의 낙오자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승리자이시다.

 

그 예수님을 생각하시면서 시련을 이겨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