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오후설교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라라 시27:1-14(2011. 7. 17. 오후예배 설교)

안희환2 2011. 7. 17. 13:32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라라 시27:1-14(2011. 7. 17. 오후예배 설교)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정말 강한 사람.

평소에는 알 수가 없음. 결정적으로 크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면 드러남.

그때 무너지는 사람과 여전히 견고하게 서 있는 사람으로 구분이 되기에.

 

외유내강이란 말. 좋은 것 같음. 겉보기엔 약해보이기도 하고 부드러워 보이기도 하나 사실 그 내면 세계가 튼튼한 사람.

 

성도들 보면서 감사한 것. 정말 강한 분들이 있음. 목사로서 아무리 봐도 처절할 만큼 힘들고 외롭고 답답할 텐데 하나님 붙잡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음.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그렇게 내면적으로 강건하기를 바라심. 그리고 그런 견고함은 우리가 하나님만 바랄 때 가능해짐.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어야 함.

그리고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요구사항이기도 해야 함.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라]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우리가 보다 더 견고해 질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의 고백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을 함께 생각해보고 그에 따라 내리는 시편기자의 결론이 무엇인지 나누고자 한다.

 

1.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편기자는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1) 두려움이 가득한 인생살이

 

한계성 때문에

상황의 복잡성 때문에

수많은 문제들 때문에

 

문제 자체로 인해 두려움.

그것을 생각하면서 속에서 두려움이 커짐.

그 문제가 끝나지 않을까봐 두려움. 끝없이 이어질까봐.

 

이런 두려움은 우리를 예민하게 만든다. 신경질적이 되게 한다. 공격적이 되게 만든다.

 

오늘날 사람들의 공격적인 태도. 그 이면에는 두려움이 자라잡고 있음.

 

2) 시편기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함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내가 오히려 태연하리로다. 안정을 누리는 상태.

 

두려울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음. 세상에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왔다가. 식인종? 그만큼 해를 끼치는 존재임.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실제 상황임.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그렇게 둘러 진 치고 있기도 했음.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수많은 전쟁의 상황에 놓이기도 함.

 

즉 다윗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던 인물임. 그런데 고백하는 것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3)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임.

 

a. 하나님이 건지시기 때문에

b.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믿음만큼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음 가운데 평안이 있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경외, 믿음은 세상적인 두려움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 줌.

 

뱅겔이라는 신학자의 말.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예수님의 말씀.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12).

 

4세기 동방의 명설교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이 사회악을 꾸짖고 황후 유독시아의 사치를 나무라다가 위협을 당하여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다. 그는 태연히 말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까? 죽음인가? 아니다.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께 감취어져 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인가? 아니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나의 소유를 잃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은 없고 떠날 때도 가지고 갈 것은 없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감취어져 있다.

 

저들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엘리야처럼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져 넣으면 나는 예레미야처럼 될 것이고, 굴에 던져 넣으면 다니엘처럼 될 것이고, 돌로 친다면 나는 스데반처럼 될 것이고, 목을 벤다면 침례 요한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매질한다면 나는 사도 바울처럼 될 것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2. 하나님의 장막 안에 머물기를 원한다

 

시편기자는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장막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 시편기자의 소원 하나

 

하나님의 장막 안에 거하기를 원함.

장막은 무엇인가? 성전을 의미한다고 보면 됨. 다윗 시대에는 성전이 없음. 다윗이 짓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심.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시대에 와서야 성전이 지어짐.

 

장막이란 용어가 여러번 나옴.

 

장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물론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시지만). 따라서 다윗이 여호와의 장막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머물고 싶어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여기에서의 장막은 어떤 지정된 한 장소를 말한다기보다 하나님께 함께하는 시공간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음.

 

이것은 다윗의 사랑의 표현. 사랑하면 함께 있고 싶어함.

 

1.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2.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길로 가겠네

3.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4. 옛날 선지 에녹같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려 올라갈 때까지 주와 같이 걷겠네

 

[후렴]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다윗은 그런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였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가지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음.

 

2) 장막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이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모하는 이유.

 

그곳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된 삶의 모습이 있음.

 

하나님의 지키심이 있음.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환난 날에. 심한 고통의 순간. 견디기 힘든 좌절의 순간.

그때 하나님의 지키심을 체험할 수 있음.

위험한 순간에 나를 숨기실 수 있음.

 

이 역시 다윗이 깊이 체험한 바임.

사울이 잡아 죽이려고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하나님이 다윗을 숨기시니 잡을 수가 없음.

거의 잡히게 된 무렵. 사울에게 급한 전령이 옴. 블레셋에 쳐들어왔다고. 덕분에 다시 위기를 모면하는 다윗.

 

야곱. 라반을 피해 도망. 이것을 3일 후에 안 라반이 7일 길을 쫓아와서 야곱에게 이름. 그러나 야곱을 해하지 못함. 하나님이 꿈에 라반에게 경고하신 것임.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에게는 이런 지키심이 있음.

 

엘리사. 불말과 불병거.

 

어느 선교사님의 간증.

 

선교사가 그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 오지로 선교사역을 하러 가셨습니다. 그 분이 정착한 곳은 당시 식인종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지한 원주민들에 의해 생명을 위협 당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고 다닌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밖을 내다본 선교사 가족은 기절할 듯이 놀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원주민들이 횃불과 창, 칼을 들고 선교사 가족을 죽이겠다고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선교사와 가족들은 아무런 방도도 없었기에 그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보호해 주십시요"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죽을 목숨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인지 정말로 간절하게 기도하였는데, 얼마나 오래 동안 기도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날이 훤하게 밝아 오더랍니다.

 

그리고 밖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이상히 여기면서 밖을 내다보니 집 주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가 나가 보니 저 멀리서 모든 원주민들이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인즉, 원주민들이 막 그 집에 쳐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밤하늘에 불칼과 불병거를 타고 있는 천군천사들이 그 집을 빙 둘러서 진치고 있는 것이 보이더랍니다.

 

마치 엘리사와 그 종이 있던 성을 지켜주셨던 것 같이 하나님께서 그 소명을 다하는 선교사 가족을 원주민의 습격으로부터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3) 그 장막에서 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속에서 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삶.

즐거운 제사라는 표현? 멋지지 않은가? 즐거운 예배. 기다려지는 예배. 그만큼 좋은 것임.

최지선과 이야기. 여론조사 회사에 일함. 얼마나 회사가 좋은지 명절에 쉬면 회사에 가고 싶었다고 함. 지금은 아닌듯함.

주일이 기다려지는 삶. 각종 예배가 기다려지는 삶. 예배가 너무 즐거워서. 그것이 다윗의 모습이었음. 하나님이 축복하실만 하지 않은가?

 

늘 찬양이 끊이지 않기를 갈망한 다윗의 삶.

찬양엔 능력이 있음.

*바울과 실라의 찬양. 옥문을 열음.

 

 

3. 하나님을 찾을 때 영접하여 주신다

 

시편기자는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장막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셋째로 하나님을 찾을 때 영접하여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 하나님을 찾는 시편 기자

 

하나님을 찾는 다윗의 모습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a. 하나님 앞에 부르짖음.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b. 하나님을 찾음.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c. 버리거나 떠나지 말아달라고 간청함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다윗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다른 것이 아무리 열악해도 하나님만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지만 자신이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시면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

 

2) 시편 기자가 확신하고 있는 것

 

하나님을 찾는 자신을 영접해 주시리라 확신함.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a. 부모님으로 인한 서러움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거의 없음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정말 비정상적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상황이 최악일 것임. 그래도 웬만하면 자식 버리는 부모는 없음.

 

그러면 다윗은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

사무엘이 왕을 뽑으려 할 때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잔치를 벌이면서 다윗만 일하게 함.

 

미워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임. 누군가는 양을 지켜야 하기에, 그런데 사무엘이 중요한 일로 부르는 것 같은 시점에서 막내가 가장 해당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나 다윗의 입장에서 그 일은 서러움이 될 수 있음.

 

효빈이의 서러움. 차별 안 하는데도.

 

b. 그러나 하나님은 영접하신다

 

다윗의 경험.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다윗을 단 한 번도 내치신 적이 없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영접하여 주심.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임. “13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그렇기에 다윗은 늘 고통스러울 때나 낙담이 될 때에 하나님을 찾았던 것임. 평안할 때도 여유로울 때도 늘 하나님을 찾았던 것임.

 

목자가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양처럼 목자 되신 하나님 안에 머물고자 끊임없이 발버둥 쳤던 것임.

 

c. 하나님을 찾는 우리를 영접하시는 하나님.

 

탕자의 비유. 내쳐도 될 상황인데 내치지 않으시는 아버지. 그 모습은 바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임.

 

포악한 노예 상인이었고 탕자였던 죤 뉴톤 목사님. 죤 뉴톤은 예수 믿고 목사가 된 후 40여년 동안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다고 하지만 나 같은 노예상인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하고 되뇌었으며, 문득 문득 과거의 죄가 떠오를 때에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공포마저 들곤 했다.

 

그래서 그의 벽에다가 이사야 434절 말씀을 써 붙여 놓고 마음이 떨릴 때마다 읽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히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노라" 이 말씀을 가지고 그는 일생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용서받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그는 82세로 숨을 거두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아마 내가 하나님 나라로 가면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엔 전혀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가면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죤 뉴톤 노예 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것은 나의 고백이기도 함. 하나님마저 나를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시라.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고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끝내 거절하기 때문임.

 

내가 좌절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나를 영접하신 하나님.

 

 

결론

 

시편기자는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장막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셋째로 하나님을 찾을 때 영접하여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고백 속에서서 나오는 선포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다른 이들을 향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하여

 

강하라.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라.

 

기죽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 주저앉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라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