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보고 놀란 친구들/안희환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84)
몸이 자주 아픈 관계로 학교를 종종 빠질 수밖에 없었던 나는 때로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아버지는 놀러 나가시고 어머니는 일 하러 가시고 동생들은 학교에 갔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다. 간병이고 뭐고 없었다. 그런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 역시 기대하지 않았었고.
온 가족이 모여 살기에는 턱없이 좁았던 우리 집이었기에 자다 보면 이리저리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한 여름에는 문을 다 열고 자도 찜통이었는데 혼자 지키는 집은 왠지 커보였다. 휑하니 비어있는 반대편 벽을 바라보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때로는 마음 한 구석이 서러워져서 눈물을 흘렸는데 병에 담으면 꽤 많은 양이 되었을 것 같다.
나는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인데 어릴 때 혼자 지내던 훈련이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심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었지만 점차 적응을 해갔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혼자 있는 시간들이 즐겁기도 하다. 사실 심심해할 시간도 없지만 말이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어느 날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오후 쯤 되어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다. 학교 친구들이 우리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종종 학교를 빠지는 나를 위해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보내신 것이다. 같은 판자촌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없었기에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가운 마음도 들었고.
그런데 우리 집을 본 친구들의 반응이 문제였다. 발로 걷어차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우리 집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것인지 친구들의 표정이 떨떠름해 보였다.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말을 주고받으며 떠드는 것이 정상인데 서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역시도 서먹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 아이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 반가웠던 마음이 점점 사라져갔다는 기억만 뚜렷하게 남아있다. 사실 그때에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헤아려볼 생각 자체가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아이들이 초라한 우리 집을 보면서 실망을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경험하기도 했었다. 대학 다닐 때의 일인데 우리 집에 찾아왔던 친구(이승문)가 다음 날 학교에서 날 보더니 꼭 껴안고 이렇게 말했었다. “희환아 네가 그런 집에 사는 줄 몰랐었어.” 역시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긴 내가 가본 친구들 집 중에 우리 집보다 초라한 집은 한 군데도 본 적이 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다행인 것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판자촌에서 살았던 덕분에 아주 초라한 집에 방문을 하게 되어도 충격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심하게 초라한 집이 뭐 있겠냐 하는 의문이 들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지금도 그런 집들이 많이 있다. 내가 살던 광명시 소하동엔 지금도 판자촌이 그대로 남아있고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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