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73)/ 잃어봐야 소중한 것을 안다/ 안희환
시간이 갈수록 아물어야 하는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상처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은 많이 힘들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사라지지 않는 통증과 한 팔이 없음으로 인해 겪는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도 누그러지지 않았고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사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때는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공연히 하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귀담아 들어야할 귀한 교훈을 담고 있다. 양팔이 다 있는 사람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겠지만 한 팔이 없는 사람에게 양팔이 있는 사람은 그 하나만으로도 부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한 팔의 불편함을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 한 손에 물건을 들고 있으면 우산을 들을 수가 없다. 물건을 꼭 들고 가야하는 경우에 나는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비를 다 맞아야만 했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는 것도 서글프지만 우산이 있는데도 그 우산을 쓸 수 없는 것은 더 서글픈 일이다.
버스를 탈 때도 마찬가지이다.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탈 경우 지금처럼 어깨에 멜 수 있는 가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팔에 걸쳐야 하는데, 팔에 가방을 걸치고 버스 안의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버스가 정차하거나 출발할 때마다 보통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한손으로 가방을 걸친 데다가 움직이는 몸을 지탱하려니 팔이 보통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반대편으로 가방을 옮길 수도 없으니 꾹꾹 참으며 버텨야했다. 어차피 차비도 마련하기 힘든데다가 버스 타는 것도 곤욕이니 그 후로 여간해서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특별히 내가 참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동으로 닫히도록 스프링이 장치된 문이다. 손에 책을 몇 권 들은 경우에 나는 다른 손으로 문고리를 돌릴 수 없기 때문에 손에 든 책을 내려놓고 문고리를 돌린 후 문을 열고 몸을 숙여 책을 집어야 했다. 그런데 책을 집는 동안 얄미운 스프링이 문을 도로 닫히게 만들었다. 몸으로 밀어도 문고리를 돌리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아야 했기에 다시 책을 내려놓고 문을 열어야했는데 이런 것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도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속에서 분통이 일어나곤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어떤 모임을 가지면서 빙 둘러서서 손을 잡게 하는 것이었다. 손에 손을 잡고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원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데 내겐 왼팔이 없기 때문에 왼쪽에 있는 사람에겐 손을 내밀 수 없었다. 결국 하나의 커다란 원이 나라는 한 사람 때문에 망가진 것이란 생각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금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참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박수치는 모습이었다. 손과 손이 마주쳐 짝짝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악기 소리도 경쾌한 박수소리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말이다. 중학교 입학한 3월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의 박수도 쳐보지 못했다. 가장 멋진 연설을 듣는 순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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